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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를 어쩔 수 없이 들이마시면서, 농업을 걱정한다. 기후변화 앞에 농업이 위기이다. 감귤이 경기도에서 날 정도로 한국은 아열대 기후로 급격히 변하는 중이다. 고랭지 채소와 배추 생산이 줄고 있다. 농산물 생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논밭에서 밥상에 이르는 농산물 유통이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영시장인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도 마찬가지다. 1985년 개장할 당시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폭염 속에서 농산물의 신선도를 유지할 현대화된 저장설비가 없다. 대형 선풍기로 버티는 상황이다. 그저 비를 가려 줄 수 있을 뿐이다.   

기후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농산물 유통개혁이 시급하다. 시민에게 신선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은 사회의 책임이다. 최소한 공영 도매시장은 폭염과 가뭄 등 기상이변에서도 농산물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현대화된 시설을 시급히 보유해야 한다. 그리고 유통단계와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야 농민은 생산의 대가를 누리고, 시민은 누구나 경제적으로 큰 부담 없이 신선한 식품을 먹을 수 있다. 이것이 공영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세운 목적이다.        

그러나 농산물 유통의 실상은 안타깝다. 연간 5조5000억원의 농수산물을 유통시키는 공영 가락시장조차 현대화가 표류 중이다. 지난 5월에 무, 배추, 건고추, 마늘 등 채소 유통 현대화 시설 중간 설계를 완료했지만, 아직 착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경매장에 들어온 채소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정온시설 공사비를 추가한 것이 주된 이유이다.

 경매장 정온시설은 기후 변화대응을 위한 핵심적인 농산물 유통시설이다. 그렇지만 애초보다 예산이 증액되었다는 이유로 기획재정부는 지난 9월 ‘적정성 재검토 절차’에 착수했다. 그래서 현대화를 착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화된 농산물 유통은 공공재이다. 99%의 시민, 미세먼지와 기후변화에 노출된 대중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농산물 유통 현대화에 쓰는 예산은 대기업에 지원하는 국고 못지않게 사회적 기여도가 높다. 기재부는 ‘하찮은 농산물’이라는 인식을 가져서는 안된다. 농산물 유통의 공익적 기능을 인식해서 재검토 절차를 신속히 마쳐야 한다.

기후변화 시기에 농산물 유통은 복잡하지 않아야 한다. 유통단계는 최대한 짧아야 하고, 신속해야 한다. 수집과 경매 단계에서 농민과 농협이 직접 농산물 도매시장을 주도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농산물유통법은 출하자 농민이 경매 진행 회사에 위탁하여 판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농협과 같은 조직화된 농민조직이 조합원을 위하여 직접 진행하는 경매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출하자 조직의 획기적인 발전이 필요하다.

농산물 분산 단계에서도 거리를 줄여야 한다. 시장에서 농산물을 매입하여 시중에 유통시키는 도매 유통인(중도매인)이 직접 출하자 농민으로부터 매입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지금의 농수산물유통법은 원칙적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다. 도매 유통인 사이의 거래도 허용하여, 공영도매시장이 농수산물 유통 개혁의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통합 정산 시스템을 도입해서 도매 유통인들이 물건값을 떼일 염려 없이 농산물을 중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공영 도매시장이 농수산물 유통의 중심지가 되고, 다시 이 경제적 가치가 출하자 농민에게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기후변화에서는 신뢰에 기반한 유통으로 발전해야 한다. 분산 단계에서 농산물 현물이 굳이 가락시장까지 왔다가 소비지로 다시 운송되는 이유는 도매유통인이 현물을 보고 살지 말지와 입찰 가격을 정하기 때문이다. 출하자에 대한 신뢰를 높여 인터넷 공간에서 농산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시스템을 발전시켜야 한다.  

가락시장 경매장의 대형 선풍기로는 기후 변화에 대비할 수 없다. 시민에게 신선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일은 사회의 책임이다. 가락시장 현대화, 더 늦추어서는 안된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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