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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자주 사막에 비유된다. 도시의 이미지가 삭막한 탓이다. 도시가 사막이라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모래알이다. 도시라는 사막에는 모래와 모래를 이어주는 접착제가 없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늘 비어 있다. 서구 인문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도시는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의 공동체다. 그래서일까. 사막을 주제로 한 시는 비교적 쉽게 다가온다. 우리 자신, 즉 모래알들의 자화상인 경우가 많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프랑스 파리 지하철공사가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에서 1등으로 당선된 오르텅스 블루의 시 ‘사막’ 전문이다. 매우 짧은 시인데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읽는 이로 하여금 이야기를 빚어내도록 한다. 독자에게 시를 이어 쓰도록 권유한다.

위 시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그 사막”의 “그”다. 다른 지면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그 사막”은 일반적 사막이 아니고 특정 사막이라는 표시다. 도시로 치면 도시 일반이 아니고 서울이나 부산처럼 실재하는 도시다. 물론 도시가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일 수도 있고, 누구와의 만남이나 여럿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시 속의 그는 혼자 사막을 걷고 있다. 외롭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손을 내밀 타인이 없다. 기댈 데라곤 오직 자기뿐이다.

시 속의 그는 멀리 지평선을 향하지도 않고, 밤하늘의 북극성을 올려다보지도 않는다. 오아시스나 낙타를 찾지도 않는다. 대신 뒷걸음질로 걸으면서 자기 앞에 찍히는 자신의 발자국을 본다. 뒤를 돌아보면서, 과거를 돌이키면서 실제로는 앞으로, 미래로 나아간다. 블루의 시는 우리에게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인지 채근한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삶이 얼마나 삭막한지, 또 그런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 살펴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도시에서 우리는 수시로 외로워진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멈춰 서야 한다. 스스로 멈춰 서서 뒤뿐만 아니라 양옆, 위와 아래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앞을 주시해야 한다. 그렇게 다시 보는 앞은 이전과는 다른 앞일 것이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직 자기 자신만을 떠올렸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누군가가 생각났을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과 다시 만났을 것이다. 가족, 친지,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 선후배, 선생님들.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준 이름 모를 사람도 떠올랐을 것이다. 상처를 준 사람의 얼굴도 보였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관계의 산물이자 관계의 과정이다. 그런데도 진리에 가까운 이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좀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위 시의 그는 사막을 무사히, 그리고 힘차게 건넜을 것이다.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수많은 관계의 의미를 재발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에서 새로운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순간을 제2의 탄생, 혹은 ‘두 번째 생일’이라고 부르곤 한다. ‘나는 혼자’라며 괴로워하는 사람은 설령 중년이 넘었다고 해도 아직 온전한 어른이 아니다. 온전한 삶은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타인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런 삶이 자기 앞의 생을 다시 본다.

사회심리학은 우리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사회적 결속의 크기와 질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아내와 잘 지내는 남성은 동갑내기 홀아비보다 다섯 살이나 젊어 보인다. 하지만 이혼이나 별거 중에는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이 네 배나 높다. 반경 2㎞ 이내에 사는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길 확률이 25% 늘어난다는 연구도 있다. 로랑 베그의 저서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에 나오는 내용이다. 로랑 베그는 “타자야말로 인간 도덕성의 근원이자 목적”이라고 단언한다.

‘검색에서 사색으로’라는 슬로건이 있다. 이를 사회적 맥락에서 번역하면 ‘접속에서 결속으로’가 될 것이다. 사색과 결속은, 검색과 접속으로 이뤄지는 디지털 문명 속에서도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개인적, 사회적 능력이다. 때로 뒷걸음질로 걷거나 멈춰 서는 것이 자발적 사색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색과 더불어 타인의 처지에 공감할 때 사회적 결속이 생겨난다.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의 공동체, 모래의 공동체는 그때 첫걸음을 뗄 것이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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