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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지인의 어머니가 이생의 인연이 다하여 소천하셨다. 지인과는 평소 생각이 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사이였기에 그의 슬픔이 오롯이 전해졌다. 지인의 가족은 천주교 신자였지만, 생전에 종교를 경계에 두지 않고 널리 베풀었던 어머님의 뜻을 헤아려 여러 종교인이 장례의식을 집전하기로 했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순으로 고인의 하늘나라 가는 길을 축원했다. 아마도 국가장 말고 가족장을 4대 종교 성직자들이 한자리에서 치른 것은 처음이지 싶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또 가족들은 조의금 전액을 사회 곳곳에 기부했다. 뒤에 전해 들은 기부 내역을 보니, 세심한 배려가 스며있었다. 소아암을 앓는 어린이들을 치유하는 곳, 부모 없는 청소년들이 모여 생활하는 그룹홈을 운영하는 곳, 청년들의 정신성장을 위해 마음공부학교를 운영하는 곳, 고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잇는 곳, 가난한 이웃의 행복한 임종을 위하여 호스피스 병원을 운영하는 곳 등이었다. 한눈에도 4대 종교인들이 운영하는 단체가 고르게 배려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 구호에 참여한 잠수사들의 후유증을 치료하는 일에도 기부되었다.

좋은 뜻으로 쓰이는 돈도 때로는 염려와 위험의 대상이 되는데, 이런 깊은 생각과 따듯한 마음이 담긴 돈은 받는 이에게 정말 고마운 손님이 된다. 같은 물을 독사가 마시면 독을 만들고 소가 마시면 젖을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불교 경전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의도가 순수하고 청정해야 참다운 나눔이 된다’고 쓰여 있다. 지인은 무엇보다도 예수와 부처의 뜻이 지상의 아픈 사람에게 있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승자 독식으로 갈등과 탐욕이 가득한 사회에서 그래도 우리가 희망을 품고 미소 지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곳곳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힘든 이들과 나누며 사는 선한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이웃의 어려움과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는 측은지심, 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나눔이 차이의 경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 되고 있다. 사람이 희망이라면, 그 희망은 오직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꽃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사랑이 지혜를 낳는 것이지 결코 지혜가 사랑을 낳는 것이 아님을, 삶의 현장에서 가슴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알 수 있다.

크고 작은 구호단체가 활동하고, 복지시설이 다양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나눔’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이 든다. 먼저, 왜 나누어야 하고 무엇을 나누고 어떻게 나누어야 할 것인가? 나눔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내리는 특혜가 아니다. 우리는 차별과 억압으로 불안과 고통에 있는 사람들을 회복시켜 주고자 나눔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근원에서 발원하는 연민과 사랑의 실천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형을 이루는 일이다.


자원봉사단체 '나눔'의 외국인 회원들이 21일 서울 종로 충신동에서 독거노인들에게 직접 만든 명절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_김영민 기자


그래서 나눔은 개체적 ‘자연’이고 사회적 ‘자연’이다. 또 ‘나눔’에는 대개 돈과 물질적 후원을 떠올린다. 물론 돈이 절실한 사람에게 돈은 바로 구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돈으로만 살 수 없다. ‘돈’ 속에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주고받는 마음, 가슴으로 느껴지는 진실한 마음이 모두의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자존감이 온전할 때 비로소 건강한 사회, 건강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자신을 깎아내리고 타자의 삶을 부러워하며 사회의 시선에 주눅 드는 모멸감을 만드는 환경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모멸감을 해소하고 자존감 넘치는 사람 사이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멸감을 만드는 사회적 틀을 해체하는 일이 답이다. 그러나 해체하는 일은 어렵다.

그래도 상생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대안을 모색하며 새로운 틀을 수립하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한다. 약자와 소외자에 대한 연민과 나눔이 사회적 시선과 확장을 확보할 때 나눔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구현이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개개인이 쉽게 할 수 있는 나눔에 주목해보자. 불교에서 말하는 무재칠시(無財七施)는 온화한 얼굴과 눈으로 마주 대하고, 이웃의 처지를 내 일처럼 생각하며, 위로하는 힘이 돼 주는 말을 건네고, 정성 어린 손길과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아픔을 덜어내고 기쁨을 주는 나눔을 말한다. 한마디로 물질 없이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는 나눔이다.

지난 1월, 청소년 8명과 보름 동안 일지암 암자에서 인문고전학당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폭설에도 해남 북평중학교의 이병채 선생은 무거운 북을 진 채 눈보라를 헤치고 험한 산길을 올라왔다.

오로지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한 선생과 스승의 그 마음을 가슴으로 느낀 아이들은 실로 값진 수업을 했다. 나눔은 서로의 가슴을 흔드는 조용한 울림이다..


법인 스님 | 대흥사 일지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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