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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팔레스티나의 유다국에서 보수 수구파와 진보개혁파 간의 갈등이 한창 격렬했던 때다. 당시 개혁파가 부르짖던 주요 의제의 하나가 ‘산당’의 철폐였다. ‘산당’이란 지역에서 신을 모시는 성소들로, 대개가 산에 있다 보니 산당이라고 불렸다.

개혁파가 집권하고 있던 때, 정부는 개혁조치들과 함께 대대적인 문서 편찬 사업을 벌였다. 그 문서들 중에는 오늘날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공히 핵심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제1성서(구약성서)의 원본들도 포함된다. 그 하나인 왕조실록(열왕기)에서 왕들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산당들의 철폐 여부였다. 한데 그 문서는 당대의 개혁군주 두 명만이 그렇게 했음을 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산당 철폐는 수구-개혁 논쟁이 한창이던 때 개혁파가 제기한 논점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산당의 무엇이 문제이기에 개혁파가 그토록 철폐를 부르짖고 역사관으로까지 부각시키고 있었던 것일까?

이들 개혁파가 주장한 것은 오늘의 시점에서도 놀랍다. 그들은 부자들이 강탈한 토지를 소농에게 되돌려주려 했고, 노예가 된 이들도 신분을 회복시키려 했다. 소농의 몰락 경로를 파악하여 법과 제도를 통해 그것을 원천봉쇄하려     했으며, 이주민에게도 권리를 부여하는 정책을 취했다. 몰락의 위기에 처한 소농이 회복되고 이주민도 백성이 되면, 백성은 군주에게 더욱 충성할 것이고, 정부 재정도 보다 튼튼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몰락한 이들을 구휼하는 복지체계들도 기획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체의 정책들을 위한 주요 비용을 부자증세를 통해 충당하려 했다.

한데 개혁파가 집권하고 있을 때도 개혁은 쉽지 않았다. 막강한 자원을 장악하고 있는 수구보수 세력의 저항도 그랬거니와, 무엇보다도 농민들 중 다수가 오히려 그 개혁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5 핵심개혁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개혁세력이 파악한 문제의 핵심은 바로 산당에 있었다. 산당은 당시 가장 중요한 매스미디어였다.

대중과 중앙정부를 연결하고 대중과 신(또는 진리)을 연결하는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소통매체인 것이다. 당시 중앙의 개혁세력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소농과 이주민을 위한 개혁안을 포고했다. 이때 그 개혁적 조치들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가장 중요한 소통매체는 산당이었다.

그런데 산당은 오히려 왜곡의 장치였다. 산당이라는 제도가 그랬다. 산당들끼리의 경쟁에서 규모가 클수록 유리했다. 또 사제들은 규모의 경쟁에서 성공할 때 더 높은 사제가 되었다. 예외가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그러했다. 더욱이 사회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면 대지주들과 산당의 연계고리는 더욱 견고해졌다. 역설적이게도 개혁파가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은 바로 그런 때에 온다. 하지만 그 개혁적 의지가 산당을 통과하면서 왜곡된다. 산당이 대체로 보수수구파의 소통의 장치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개혁파로 하여금 산당의 철폐를 강도 높게 부르짖게 했던 이유다.

시시콜콜 성서 속 사건의 배후가 된 한 역사를 들춰본 것은 ‘그 산당들’에서 바로 우리 시대가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양극화 문제가 너무나 심각해졌다. 복지나 경제민주화 같은 개혁안이 주요 의제로 부상한 것은 바로 이런 현상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탄생은 이러한 의제에 훌륭하게 편승한 덕이 크다. 한데 오늘의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은 그 공약들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양극화를 더 악화시킬 것이 뻔한 법안들과 명목뿐인 복지와 경제민주화 조치들,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정책들, 서민증세와 부자감세안들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문제는 그럼에도 서민의 지지가 놀라울 만큼 탄탄하다는 데 있다. 도대체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매스미디어 역할을 하는 ‘오늘의 산당들’이 주목되는 이유다. 지상파와 종편 방송, 그리고 신문 등 주류 언론이 내뿜는 정보의 편파적 전달과 해석들은 총선에 임박할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이런 언론 상황 아래서 진정한 서민개혁이 가능할지 우려된다.

“산당들을 폐하라”라고 외쳤던 고대 유다국의 개혁정책은 실패했다. 한데 놀랍게도 이 구호는 그 나라가 몰락한 이후까지도 오래도록 남았다. 아니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신탁으로 변형되어 유령처럼 그 땅을 떠돌았다. 해서 그 땅에 등장한 새로운 체제들은 이 유령 같은 신탁을 감안하지 않고는 어떤 국가도 만들 수 없었다. 하여 바위에 던지는 달걀에 불과할지라도 오늘 우리는 시대의 산당들을 폐하라는 구호를 멈출 수 없다.


김진호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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