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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산이 넘어 산

opinionX 2018. 11. 22. 14:56

지난 주말 문학인들의 모임에 꼽사리꼈다. 신간을 낸 소설가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정작 그날의 주인공은 자리에 없는 래퍼 산이였다. 그가 ‘I am feminist’라는 제목으로 16일에 발표한 음원 때문이다. “산이의 진실된 마음의 소리일 거다” “아니다. 안티 페미니즘을 풍자하기 위해 무식한 이야기의 전형을 긁어모아 전시한 것이다. 예술성 있는 퍼포먼스다” “풍자를 의도했다면 장치가 더 필요했다. 산이가 그동안 써 온 가사들이 그의 가치관을 드러낸다. 풍자보다는 평소의 신념을 표출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등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산이의 진심’보다 더 주목하고 우려한 것은 남성 유저가 대다수인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이었다. 산이 칭송으로 대동단결된 그 분위기 말이다. “ ‘페미’가 온 나라를 꽉 잡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산이의 용기는 인정해줘야 한다”는 비장한 응원부터 “무슨 내용인가요? 너무 빛나서 선글라스 끼고 봐도 안 보이네요”라는 과장 어린 숭배까지 다채로운 칭송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내용의 오류 점검을 포함한, 작품성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에는 너무 일방적인 환경이었다. 평소 다양한 관점과 깊이 있는 분석을 접할 수 있었던 음악 커뮤니티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상황이 더 심각하다 느꼈다.

산이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디스곡을 발표해 화제가 된 래퍼 슬릭(왼쪽)과 제리케이. 두 사람은 과거에도 힙합계의 여성혐오적 문화를 비판했다. 김영민 기자

반면 산이를 디스하는 곡을 발표한 래퍼 제리케이와 슬릭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별안간 엄격하고 근엄해졌다. 산이의 가사 “데이트할 땐 돈은 왜 내가 내, 지하철 주차장 자리 다 내줬는데”에 “CEO 고위직 정치인 자리 대신에 지하철 버스 주차장 자리로 내는 생색”이라고 대응한 제리케이의 가사를 반박하는 장문의 글이 특히 인상 깊었다. 고위직에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건 사실이지만 남자라고 다 고위직에 앉을 수 없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며 결정적으로 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정서적 맥락을 반영해  요약하면 ‘난 남자이고 고위직 아닌데? 남자로서 이득 본 거 하나도 없는데? 완전 억울한데?’가 되겠다.

내가 어리둥절했던 건, 그런 식의 비판은 산이의 곡에 대해서도 가능해서다. 산이 가사에 대고도 ‘난 차 없는 여자라 주차장 이용 안 하는데? 지하철에서도 양보 받은 적 없는데? 오히려 임산부석에 앉은 아저씨들 볼 때 많았는데?’와 같이 반박할 수 있다. 앞서 벌어진 일반화에 대해서는 묵인하고, 같은 논법으로 대응한 것만 엄격하게 따져 묻는다면 명백한 이중잣대요, 기시감이 느껴지는 부조리다.

네 편, 내 편 갈라 차별하는 행태의 산물이라고 본다. 산이는 ‘우리 편’이니 너그럽게 봐주고, 슬릭과 제리케이는 ‘메갈’ ‘페미’ ‘비정상’의 편일 테니 쳐부수자는 대동단결. 하지만 ‘산이 칭송자’들은 곧 ‘아… 우리 편 아니었나 보다…’ 하고 머쓱해졌다. 19일 새벽, 산이가 인스타그램에 ‘I am feminist’의 가사 한 줄 한 줄마다 주석 달아 해명한 글을 올린 것이다. 요약하면 이 곡은 풍자의 의도로 만들어졌고, 그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 이를 화자로 설정했다는 것. 그 전부터 산이가 쓴 표현에 계속 열받아오고 이번에 결국 임계점을 넘은 이들은 해명에도 가라앉지 않았고,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배신감에 휩싸인 사람들도 갑자기 태세 전환했다. 이제 산이는 사방에서 욕먹는다.

그래도 속한 집단의 대세에 편승해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이들보다는 산이가 낫다고 생각한다. 그는 적어도 자기 신념을 (비록 구릴지라도) verse로 갈무리해 직접 내뱉었으니까. 반면 깔짝깔짝 ‘상대편’ 흠집내기만 골몰하며 스스로의 논리적 오류에는 귀 막고 입 닫는 저 거대한 덩어리는 도대체 어찌하면 좋을까? 산이 넘어 ‘산’이다.

힙합 음반 최초로 퓰리처상을 거머쥔 <DAMN.>의 켄드릭 라마는 말했다. 정보를 듣고, 편견 없는 시각을 갖고, 궁금한 것은 혼자 탐구하는 능력이 삶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누구보다 산이에게 가닿을 말이겠지만, 래퍼 아닌 사람들도 적용하면 좋을 삶의 태도로 보인다. 무언가 절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볼 때 나와 다른 편은 아닐까 방어하며 선입견 갖기보다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경청하고 스스로의 머리로 고민하는 ‘개인’이 한국 사회 다수를 차지하는 그날을 위해 문학인들과 건배했다.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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