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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지난 6월28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1조 5항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적어도 올해에는 외고·자사고·국제고에 지원했다 떨어진 학생들이 예전처럼 희망하는 일반고에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자사고에 국한된 결정이지만 실제로는 외고·국제고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제81조 5항은 지난해 12월 개정된 것으로 외고·자사고·국제고 지원자의 일반고 지원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헌재의 결정은 당연하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은 대선공약(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와 교육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전부 학생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을 난처하게 만들어 목적을 이루려는 방식이다. 정부의 시행령 개정은 외고·자사고·국제고에 지원하려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너희들 외고·자사고·국제고에는 갈 생각을 하지 마. 지원했다 떨어지면 너희가 원하는 다른 학교에는 절대 못 가게 될 거야. 떨어지면 정원 미달인 학교에 보낼 거야.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에 가게 될 수도 있어. 그러니 외고·자사고·국제고에는 갈 생각을 하지 마.” 

실제로 시행되면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인기가 꽤 낮아지긴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내 머릿속엔 그보다 바람직한 2개, 아니 3개의 방법이 떠오른다. 하나는 외고·자사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법이다.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존립 근거를 제시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면 되는 일이다. 시행령 제90조 1항, 제91조의3 등이다. 시행령 개정이니까 전적으로 정부(대통령)의 권한에 속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존재는 인정하되 일반고처럼 오로지 추첨으로만 학생을 선발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외고·자사고·국제고를 없애지 않은 채 이들 학교로 인한 초·중학생들의 입시경쟁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2조 1항을 개정하면 된다. 역시 전적으로 정부(대통령)의 권한이다.

다른 정치세력들이 반대를 하지 않을까? 첫 번째 방법은 대선 당시 바른정당(유승민 후보)과 정의당(심상정 후보)이 내걸었던 공약과 동일하다. 두 번째 방법은 국민의당(안철수 후보)이 내걸었던 공약과 일치한다. 이들 정치세력은 찬성할 것이다.

앞의 두 방법이 전부 부담스럽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공약을 포기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또는 뒤로 미루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구성될 국가교육위원회의 과제로 돌린다면 명분이 그리 옹색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현 정부의 대선공약에 의하면 국가교육회의는 국가교육위원회를 위한 과도기적 존재다. 공약 취지대로라면 큼직한 교육정책은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게 맞다.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은 타당한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와 교육부가 꾀한 방식은 그것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정부·교육부의 공약 이행 방식은 학생들을 수단으로 삼아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 점에서 정부와 교육부는 정치적 술수라는 의미의 마키아벨리즘을 실행했다 할 만하다. 그런데 그것은 그냥 마키아벨리즘이라고만 하는 것보단 소인배 마키아벨리즘이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한 듯하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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