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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개월이 지났다. ‘2018 책의 해’ 출범식 이후 금세 4개월이 지난 것이다. 주위에는 집행위원장을 맡은 내가 슬슬 지쳐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안부를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쉽사리 지칠 새도 없이 당장 해나갈 일이 눈앞에 있고, 무엇보다 그 일이 재미있다. 책을 만들고 파는 출판인으로서 책과 관련된 행사를 치르는 일, 책 읽기의 즐거움을 일깨우는 일은 사명감보다 직업적인 촉으로서 본능적으로 흥이 날 수밖에 없다.

정작 ‘책의 해’ 집행위원장으로서 두려운 것은 따로 있다. 여러 층위에서 각 단체와 논의하다 보니 일이 꼬일 때도 있지만 이건 두려움의 차원이 아니다. “이런 운동을 한다고 나아집니까. 국민들이 독서를 하게 되나요?”라는 냉소적인 태도와 맞닥뜨렸을 때 두렵다. 감추어진 자신의 내부 목소리와 손을 잡는 듯한 서늘함이 느껴진다. 처음부터 제일 두려웠던 것은,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보다 잘한다고 해도 독서운동의 성과가 좋을까 하는 문제였으니까. 아아 이런 태도 앞에서는 무슨 답도 찾을 수가 없다.

서가와 식물을 함께 배치한 마음산책 출판사 부스. 마음산책 인스타그램

지난달 새로 취임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은 취임 인터뷰에서 이런 계획을 밝혔다. “아이들을 위한 책 복합문화체험공간을 세우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예술 경험이 나이 들어서도 유지되듯, 아이들이 책을 직접 쓰고 만들고 오디오북과 멀티미디어도 제작해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친근하고 편하며 유쾌한 경험으로서 독서 체험을 확산하는 장기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체험’이라는 단어에 책 읽기의 맥락이 그대로 닿아 있다. 정부의 독서 진흥 계획을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자리에서 나는 두 가지 ‘체험’ 사업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선 청소년에게 ‘책과 출판의 체험’ 기회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책을 읽으라고 말하기 전에 책이란 무엇인가,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과 관련된 기본 상식과 교양을 직접 겪을 수 있는 장소로서 출판사, 인쇄소, 스튜디오, 제본소 등을 보여준다. 책과 관련된 궁금증과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시간이 될 테니까.

두 번째는 청소년의 ‘단기 독서 학교’를 출판사에 위탁, 운영하자는 것이다. 일정한 독서 프로그램으로 최소 5권의 맥락 있는 독서로 책 읽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장르와 책은 출판인과 청소년이 직접 고르도록 해 참여를 유도하고 해당 장르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가 생동감 있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제작 뒷얘기를 듣고서 책에 흥미를 갖고, 스스로 읽고 이해하는 방식을 터득할 것이다.

아이디어는 실현할 때 의미가 있다. 체험하는 독서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하고 실제 활동도 이루어져서 책과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결과적으로 독서운동의 성과가 남을 것이다.

‘2018 책의 해’ 사업이 8월부터 더욱 본격화되었다. 일상을 영위하는 곳은 어디든지 도서관이 된다는 의미로 삶(life)과 도서관(library)을 조합한 ‘라이프러리(Lifrary)’를 만들었다. 이를테면 생활 속의 도서관. 5000권의 책이, 움직이는 놀이터와 함께 8월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부터 9월 제주도 협재해수욕장, 10월 서울숲 그리고 광화문광장에서 펼쳐진다.

여전히 독서운동의 성과를 의심쩍은 눈빛으로, 혹은 비관적인 마음으로 걱정하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일단 행사에 참여하라고. 당신의 참여가 문화를 만드니까.

책과 나, 책과 우리의 사진을 찍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올리는 행위는 비교적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일이다. 전국적으로 찾아가는 이동 책방 ‘캣왕성 유랑책방’에서 ‘고양이 금서 목록 300권’을 들춰보는 일,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심야까지 열려 있는 동네 책방에서 어둠 속에 묻힌 빛나는 책을 찾아보는 일은 적극적인 체험이다.

‘책의 해’가 앞으로 5개월 남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재미있는 책 행사를 빨리 치르고 싶다. “살다 보면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거의 그것으로 일상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세상에서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는 일본의 에세이스트 마스다 미리의 말을 떠올려본다. 나와 미래의 독자들이 같은 위치에서 같은 희망을 갖고 있기를 바란다.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읽는 사람 모두가 흥이 나는 독서운동이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후회하지 않으려면 연말까지는 재미를 잃지 않으며 ‘책의 해’ 행사를 치러야 한다. 책을 찾아나서는, 책을 읽는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봐두고 싶다. 그러니 내게 잘될까를 묻지 말고 잘해보자고 안부 인사를 건네주시라.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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