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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늘 거짓보다 어렵다. 거짓은 머릿속에서 상상하거나 지어내면 그만이지만, 진실은 이런저런 근거와 감춰진 사실의 파악과 심지어 용기까지 필요하니까. 나아가 우리는 뻔히 밝혀진 사실조차 진실과는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잘 안다. 한 편의점주가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하면서 그간의 임금을 몽땅 동전으로 지급해 큰 공분을 산 적이 있다. 편의점주에 대한 성토가 인터넷에서 들끓었는데 사실은 조금 달랐다. 아르바이트생이 불성실한 근무태도로 무던히도 속을 썩였고 해고과정에서도 상식 이하의 행태를 보여준 모양이다. 점주는 후에 자신이 한 일이 잘못은 잘못이라며 사과했지만,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지 공감이 가기는 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소란도 그러하다. 가장 직접적인 부담을 안게 된 자영업자의 불만이야 이해하지만, 최저임금과 무관한 가족 또는 나홀로 점포가 70%이고 자영업자들이 꼽은 어려움의 이유 중 인건비는 22%로 가장 후순위(7월4일자 ‘경향의 눈’ 인용)라는 사실 같은 건 가려져 있다.

주변에 과학자 친구들이 여럿이라 진실에 접근하는 태도에 대해 배운 바가 많다. 그중 하나가 “과학자들은 실패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과학자들은 실험에서 예측하거나 가정한 것이 실패로 돌아가는 경험을 늘 하는 터라, 그때마다 생각을 수정하면서 차츰 과학적 진실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과학은 의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드러난 사실에 대해 아무리 합리적으로 보이는 설명일지라도 끝없이 의심함으로써 오류의 가능성을 줄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현 가능성, 즉 다른 실험 다른 환경에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가 과학적 진리의 중대한 기준이 된다.

사실에 대해 과학이 취하는 회의적 접근법은 삼단논법이라는 고대의 논리학에서부터 확립되어 있었다. 삼단논법의 하나인 ‘후건부정식’에서는 전건에서 도출한 후건이 반박되면 전건도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기각된다. 칼 포퍼가 과학의 특성으로 든 ‘반증 가능성’이라는 기준이 바로 이 논리에 기준한 것이다.

최근 김탁환 소설가와 함께 그의 새 작품 <대소설의 시대>를 가지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18세기 말 ‘대소설’이란 이름으로 어마어마하게 긴 장편과 대하소설이 왕성하게 생산되던 시절, 그 이야기들을 짓고 읽는 여성 주체들과 실학파 등 젊은 지식인들을 그린 소설이다. 무척이나 흥미진진했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궁금증이 일어서 질문했다. “역사물을 쓸 때는 역사적 사실의 엄연한 틀 때문에 작가적 상상력이 제한받지 않나요?” 작가는 자주 받는 질문이라며 답했다. “상상력은 튼튼한 팩트에서 나옵니다. 치밀한 조사와 연구가 선행될수록 상상력에 자신이 생겨서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거죠.”

허구의 장르인 소설조차 사실의 신전에서 출발하고 과학도 자기부정을 본질로 삼는데, 그 어느 때보다 과학적이 된 이 시대에 왜 가짜뉴스와 거짓말들이 횡행하고, 아니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가짜뉴스와 거짓 발언들이 범람하는 이유들을 짚기는 어렵지 않다.

첫째는 현대 문화의 특성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일찍이 장 보드리야르는 ‘시뮐라크르’라는 개념을 통해, 처음에는 ‘팩트’라는 원본을 가리키던 기호가 원본에서 풀려나와 독자적 존재로 기능하는 현상을 지적한 바 있다. 원래 정보, 기호, 화폐는 사실에 대한 지시적 기능에서 출발은 했지만 유통 과정에서 다중의 승인이 없으면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는 것들이다. 명품 가방을 누구나 명품으로 알아보지 못한다면 흔한 메이드인차이나 제품과 다를 게 없어진다. 가짜뉴스가 유통되고 소비되는 한 뉴스의 자격을 갖는 이유다.

둘째는 긴 맥락을 가진 서사를 소화하는 대중의 능력이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도 긴 이야기들은 더 이상 팔리지 않고 책도 그러하다. 재치가 넘치는 짧은 문장들과 선정적인 정보들만 선호를 받는다. 하지만 진실은 늘 길고 깊은 설명을 필요로 하고, 거짓보다 어려운 법이다.

셋째는 정보 권력의 이동이다. SNS나 단체대화방 같은 사적 채널이 전통적인 정보 생산의 권력을 빼앗았고, 정보의 속성이 그렇듯 가장 빠르게 많이 소비되는 정보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진실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이런 세상을 되돌릴 수 있을까? 아무래도 회의적이지만 결국 대중이 달라져야 한다는 하나 마나 한 말을 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들려주는 말들은 달콤하다. 우리는 낯설고 불편한 말들에 먼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결국 태도와 자각의 문제일 텐데, 이런 것을 또 말로 설득할 수밖에 없다는 게 회의감을 더한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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