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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제 그런 시험까지 생긴답니까? 시험 공화국이네요.” “한 줄이라도 스펙을 더 써넣고 싶은 취준생들의 심정도 이해는 돼요.” “인문학 시험 자체가 반인문적입니다.” “인문학을 희화한 것이죠.”

오는 10월 개최 예정인 인문학 시험을 두고 시끌시끌하다. 인문학 시험은 한 언론사 주최로 서울을 비롯한 6개 도시에서 처음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주최 측은 ‘인문학진흥법이 제정될 정도로 인문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이 체계적으로 인문학을 공부하고 향유하자는 취지에서 이번 시험이 마련됐다’고 밝히고 있다.

시험에선 객관식과 주관식을 합쳐 총 50문항이 제시될 예정이다. 철학과 역사에 대한 소양이 있는 응시생에게는 ‘중급’, 문예(미술·음악·문학)의 소양까지 있는 응시생에게는 ‘고급’ 인증서가 부여된다. 인문학 교육능력까지 갖춘 응시생은 ‘특급(인문학 지도사)’ 인증서가 나온다.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인문학에도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할까.

주최 측 관계자의 답은 이렇다. “사실 우리도 초급, 중급, 고급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직업능력개발원에 시험 등록을 하려면 이런 구분이 필요하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누게 됐습니다. 일단 3회를 운영하면 국가공인시험으로 인정받기 위한 신청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요. 국가공인시험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 활용 방안이 확대될 것으로 봅니다.” 그는 “기업에 제출할 수 있는 인증시험이 토익 정도인 상황에서 자신의 인문학 실력도 입증할 수 있는 시험을 만들어 달라는 절박한 사람들의 수요도 반영됐다”고 말했다.

‘인문학 위기’를 말하는 시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시험의 등장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역설적으로 인문학 시험은 우리 사회에 위치한 현 인문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는 뜻에서 단칼에 무시할 것도 아니다. 인문학은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대학에서도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자조적 신조어가 일상에서 통용될 정도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2019년 인문사회학 연구·개발(R&D) 예산은 3009억원으로 5년 새 고작 0.3% 증가한 규모다. 최근 5년간 R&D 예산에서 인문사회학이 차지한 비중은 1.5~1.6%에 불과하다. 그나마 연구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아 학계에선 원성이 잦다.

현실은 이러한데 한편에선 인문학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인공지능(AI)을 내세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끄는 것은 다름 아닌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마저 허물어지는 시대에 인간,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편승한 ‘CEO 인문학’이나 자사의 브랜드와 기업 이미지에 인문학을 덧붙이려는 상업화 또한 만연하고 있다.

본질로 돌아가 질문해보자. 과연 우리시대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사회학자 노명우 아주대 교수는 “인문학이란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 그 질문을 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인문학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 때문이지, 어떤 대답을 잘하는 능력이 인문학적 능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문학이란 결국 인간과 관련된 질문이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핵심입니다. 질문 자체가 의미 있고 그 과정이 중요한 것이죠.”

‘거리의 인문학자’로 불리는 작은 도서관 ‘책고집’의 최준영 대표는 “사람에 대한 이해”라고 간단히 말한다. 그는 노숙인 등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과 인문학을 통해 희망을 싹 틔우려 한 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것이 인문학이죠.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 중에는 많은 이가 자기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 내치고 살면서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책을 읽고 서로 내가 속한 사회와 역사를 말하면서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소중한 거다’ 깨닫는 거죠. 그러면서 스스로를 보듬고, 동시대를 사는 이들의 고통의 내용을 알고…. 눈 뜨면 돈돈돈하는 세상이지만 무엇이 중요하고, 나는 역사 속 어느 지점에 살고 있는가 고민하는 것이죠. ‘역사는 대양(大洋)을 마시고 한 줌의 오줌을 누는 것에 불과하다(구스타프 플로베르)’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역사에도, 인문학에도 정답이란 있을 수 없죠.”

‘인간이란 무엇인가, 자유란, 역사란’ ‘타인과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시대의 고통은 왜 중요한가’…. 이 질문들의 정답은 과연 몇 번일까.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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