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

[산책자]냉면과 평화

opinionX 2018. 4. 30. 14:10

아버지는 6·25 때 단신 월남한 실향민이지만 고향 얘기는 잘하지 않으신다. 80대 중반의 연세로 남쪽에서 보낸 세월이 북쪽에서 살았던 시간의 네 배가 넘으니 기억과 애착이 차츰 바래서인지도 모른다. 월남할 당시 황해도 연백의 고향에는 어머니와 네 살배기 늦둥이 동생만 있었다니, 오래전에 돌아가셨을 어머니 연세를 떠올리고는 그리움을 접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띄엄띄엄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나도 어려서부터 들어온 이야기에 어느덧 황해도민의 정서에 동화된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향을 물으면 대뜸 “황해도 연백이오!” 해놓고는 “사실은 파주에 터를 잡고 내내 살았지만…” 운운하며 설명을 붙이곤 한다. 사람들은 황해도가 고향이라는 내 대답을 농담으로만 듣고 “내가 만주 개장사 시절에 말이야” 하면서 웃음을 터뜨리곤 하지만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고 있다. 연합뉴스

실향민의 향수 같은 건 별로 내보이지 않는 아버지이지만 1994년 무렵 자유로가 개통되어 가족들이 함께 강 건너 북한 땅을 보러 갔을 때는 조금 달랐다. 자유로를 달리다가 오두산 통일전망대쯤에 이르면, 한강이 임진강과 합쳐지고 강 건너편이 김포에서 북한 땅으로 바뀐다. 차에서 내려 멀리 강 건너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갑자기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적이 별로 없었기에 우리들은 당황했다. 형이 아버지를 진정시킨답시고 다가가 말했다. “아버지, 그쪽이 아닌데요. 북쪽은 저쪽이에요.”

아버지는 잘살지도,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연백평야 중농 집안의 맏아들로 17살 나이에 해주에 유학을 나가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터지고 몇 개월 후 인민군이 후퇴하는 와중에 징집을 당했다. 후퇴하는 도중 부대가 깨져서 고향에 돌아오니 전쟁이 스치듯 지나갔는지 평온하기가 이를 데 없어서 다시 해주의 학교를 다니기도 했단다. 1·4 후퇴 때 탈영병 신세가 될 것 같아 연백의 넓디넓은 갯벌을 걷다 쪽배를 타다 하며 강화도로 월남을 했다. 이북 출신인 데다 학교에서 배운 러시아어와 영어 실력이 제법이어서 일명 ‘켈로부대’로 불리는 미군 8240부대에 입대를 했단다. 켈로부대에서는 무시무시한 북파공작원 따위는 아니고 그냥 첩보 분석을 하며 지냈나보다. 부대가 강화 교동도에 있었다는데, 바다 건너편의 고향땅을 보며 가슴이 많이 메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는 다시 국군에 정식 입대를 하여 꼬박 복무기간을 마쳤다니, 인민군, 미군, 한국군을 모두 거친 희귀한 경우다. 아버지는 남쪽에 살던 먼 일가붙이 아저씨의 중매로 역시 개성 인근에 살다 일가족이 함께 월남한 어머니를 만났다. 그러고는 역시 미군과의 인연으로 미군 군속으로 취직해 잡다한 노무와 건축일 등을 배우고는 결국 평생의 직업으로 삼았다.

이북사람들답게 우리 집은 내가 어릴 때부터 냉면과 만두를 상식하곤 했다. 겨울이 되면 만두를 수백 개씩 빚어 얼려두고 먹었고, 식구가 외식을 하면 냉면을 먹는 일도 잦았다. 내 기억 속의 첫 냉면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서울 구파발에 있는 한 이북식 냉면집에서 먹었던 것이다. 사실은 냉면보다 함께 사주신 불고기가 훨씬 맛있었지만. 나는 머리가 커서야 이 집안 내력에 허구가 숨어 있는 것을 눈치챘다. 연백 촌구석 출신의 17살 소년이 냉면을 먹었으면 얼마나 먹었고 무슨 맛을 알았을까. 하지만 언젠가 아버지를 모시고 양평 가는 초입에 자리한 옥천의 냉면을 먹으러 갔을 때, 당신의 설명을 듣고는 그 허구를 믿기로 했다. “해주냉면이란 것도 있단다. 황해도 사람들도 평양 못지않게 냉면을 많이 먹는데, 여기 냉면이 딱 그 맛이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금요일, 전국의 평양냉면 집들마다 손님이 줄을 섰단다. 나도 프레스센터가 차려진 일산 킨텍스 근처에서 평양냉면을 먹었다. 손님이 많아서 20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정상회담의 내용만큼이나 평양냉면에 쏟는 사람들의 관심이 재미있었다. 사람들에게는 비핵화와 종전 선언을 둘러싼 골치 아픈 정치적 분석과 CVID 등의 어려운 용어보다 ‘평양냉면’이라는 정서적 상징이면 충분한 것이다. 평화는 고도의 정치적 협상에 앞서 사람들의 마음에서부터 온다.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토록 컸는지를 평양냉면 그릇 속에서 새삼 읽는다. 그러나 나는 심드렁해진 아버지의 마음처럼 이제는 통일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본다. 통일은 상징화된 이념일 뿐, 거기까지 가는 데 지불해야 할 고통과 혼란을 생각하면 절대선일 수 없다. 남북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전쟁이 더 이상 없다면, 후퇴할 수 없는 평화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부디 우리에게 평화가 있기를!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