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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산책자]도서관의 추억

opinionX 2019. 6. 10. 11:22

마르크스가 <자본>을 집필한 곳은 대영박물관도서관이다. 거듭된 추방으로 유럽 각지에 쫓겨 다니며 살던 그는 30대 초에 영국을 마지막 망명지로 선택했는데, 죽기 전까지 30년이 넘도록 거의 매일 대영도서관을 다니며 이 문제작을 썼다. 도서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첫 번째로 입장해서는 문 닫을 때까지 남아있던 그를 직원들이 종종 쫓아내야 했단다. 얼마나 독서와 집필에 몰두했는지 도서관에서 가끔 실신까지 했다니 그 몰입의 강도가 놀랍다. 마르크스만이 아니었다. 대영도서관은 찰스 디킨스, 버지니아 울프, 코넌 도일, 버나드 쇼의 서재이기도 했다. 이들의 빛나는 작품들이 거기서 탄생했다.


얼마 전 도쿄경제대 서경식 교수가 글에서 ‘도서관적 시간’과 ‘신자유주의적 시간’을 비교했던 게 기억난다. 서경식 교수는 예산을 이유로 한 도서관들의 장서 폐기와 사서 감축을 보면서, 도서관의 존재가치를 ‘비용 대비 효과’로 계량하는 성과주의가 느리고 깊은 도서관적 시간을 밀어내고 있다고 한탄했다. 도서관의 시간은 한 개인 또는 한 정부의 수명으로는 잴 수 없고 장기적 기준으로만 그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데 말이다.


신자유주의적 성과주의는 확실히 책과 도서관의 적이다. 책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자기계발의 도구로 대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그런 용도로조차 책을 읽지 않는다.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것을 얻는 데는 스마트폰의 검색과 SNS의 소통이 훨씬 효율적이니까. 간단하게 답을 얻을 수 없는 깊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해답을 구하는 사색의 시간은 효율의 이름 앞에서 숨을 거두고 있다. 아마도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타자를 혐오하는 언어가 넘쳐나고, 그도 아니면 반짝반짝 연출한 사진들로 인정을 구하는 풍경이 책과 도서관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하는 건 당연할 것이다. 생각이 물러나면 그 자리는 날것 같은 감정과 욕망들이 차지한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조차 도서관에서 깊게 오래도록 책 읽은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종종 가기는 하지만 앉아있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열람실은 비좁고 사람들로 혼잡하여 그 틈에서 책읽기에 빠질 것 같지가 않아서다. 젊은 시절 도서관이 주었던 그 경험을 다시 얻을 수 있을까.


‘도서관’이란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안 때는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행동반경이 넓어지면서부터다. 청소년에게 변변한 오락거리가 없었던 시절이라 도서관에 가면 뭔가 다른 재미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는데, 공부나 책읽기를 핑계 댔지만 사실은 친구들과 온종일 노닥거리기 일쑤였다. 머리가 제법 컸다고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 같은 성인소설도 대출해 보았다. 야한 장면을 보려는 게 주목적이었지만, 막상 그 부분에 가면 몇 페이지씩 뜯겨나가 전혀 읽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에는 대학도서관이었다. 공부도 하고 시간도 때우고 여학생을 사귈 기회도 엿보고 시시때때로 시위도 벌어지는 학내생활의 주 무대였다. 두꺼운 원서를 대출해서 보곤 했는데, 실제로 읽은 부분은 고작 몇 페이지뿐 주로 남에게 보이려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한적한 여름방학의 도서관은 운치도 그만이었다. 텅 빈 도서관에는 창밖 숲속의 매미 우는 소리가 가득했고, 밤늦게 도서관을 나설 때는 뿌듯한 충만감 위로 밤하늘의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도서관은 책을 읽어도 좋고 필생의 역작을 집필해도 좋고 그냥 시간을 보내도 좋은 곳이다. 나는 도서관이 반드시 책만 읽어야 하는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곳은 자기 자신을 도야하고 생각을 영글게 하고 다른 곳에서 얻지 못할 경험을 쌓는 곳이다.


요즘의 공공도서관은 도서 대출을 도서관의 가장 주된 기능으로 놓고 열람실을 차츰 줄이는 추세다. 수험생용 독서실로 변할 바에야 아예 열람 공간을 없애겠다는 취지인 듯하다. 수서 공간도 제한되어 있는지라 해마다 책 일부를 폐기하고 새 책을 채우는 일을 반복한다. 가벼운 베스트셀러가 늘 1순위이기 마련인 이용자들의 신청 도서를 먼저 구입하고 남은 예산을 쪼개 수서 가치가 높은 책 구입에 배정한다. 


높다란 천장에 널찍한 테이블, 묵은 책 내음 사이에 어둑한 통로, 창밖에서 흘러드는 아카시아 향기, 새소리…. 우리 경제 수준과 국가 예산이 이런 공간들을 곳곳에 마련할 만한 정도는 되지 않을까. 1년이 아닌 10년, 50년의 단위로 생각할 여지는 없는 것일까. 거기서 수험공부를 하든 연애를 하든 어떻다는 말인가. 젊은 날 도서관에서 보낸 한때의 시간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오래 남을지를 생각해보면.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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