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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몸은 12월까지 해내야 할 일로 바쁘지만 머리는 내년 한 해의 책농사 궁리로 바쁘다.
얼마 전 <칠검>이라는 중국 무협영화를 보았는데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무시무시한 살인마 집단이 한 마을을 습격하자 마을의 여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숨는다. 그런데 여인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와중에도 “이게 우리의 희망이야”라면서 아이들 품에 종자를 한 포대씩 숨기게 했다. 멸절의 위기에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그것, 농경사회에서 그것은 아이들과 종자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마음이 좀 비장해졌는데, 내가 품고 있는 이 많은 원고 역시 하나의 종자가 아니겠는가. 출판사의 폴더 창고에 쌓인 원고는 독자라는 대지에 뿌릴 소중한 씨앗이다. 그래서일까? 매년 말이 되면 나는 원고 창고를 열어 내년에 옮겨 심을 종자들을 바라보며 다가올 한 해를 가늠하곤 했다. 아, 저놈의 종자들, 올해는 무럭무럭 커서 곡식 좀 내놓거라 하면서.
땅도 종자만큼이나 중요하다. 땅만 있으면 종자 몇 알이라도 몇 해가 지나면 수십 가마니의 볍씨가 된다. 실제로 내 지인 중에는 이 땅에서 사라진 토종 밀 종자 몇 알을 어렵게 구해 텃밭에 심어 두 해 만에 빵을 구울 정도로 수확한 분이 있다.
원고라는 종자와 독자라는 땅이 책농사의 두 상수라고 해보자. 두 상수라는 것은 이 둘을 잘 곱해야 수확의 기하급수가 기대될 정도로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라는 이야기다. 어릴 때 고향에서 양파를 한 해에 1만 개를 뽑고, 일손이 모자란 동네의 고구마를 수확해주고 뽀빠이 한 봉지를 얻어먹었다는 농군의 후예인 또 다른 지인의 말에 따르면 양파는 황토에서 가장 실하게 자란다. 아무리 좋은 양파 종자라 하더라도 땅이 황토와 멀다면 씨알이 형편없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모래흙에 양파를 심는 짓을 많이도 해왔다는 자책을 하게 된다. 내년에는 나의 종자를 받아줄 그런 지심이 흐르는 곳을 발견할 수 있을까. 올해를 마감하면서 이런 큰 화두가 무겁게만 다가온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독자의 시대’가 왔다고 다들 입을 모으기 때문이다. 교보문고가 2017년의 독서 트렌드를 정리, 발표하는 자리에서 2018년은 ‘독자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시장을 주도하는 건 특정 출판사나 언론사나 그 누구도 아니라 독자라는 이야기다. 나에게는 이것이 ‘계몽의 시대’는 완벽하게 끝났다는 말로 다가왔다. 벤야민이 말하기를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그 결을 거슬러서 읽어야 한다고 했는데, 역사와 사회의 결을 거슬러서 거꾸로 읽으려 노력했던 우리가 이제는 독자라는 벤야민에게 거슬러서 읽힘을 당하는 텍스트가 된 기분이랄까.
얼마 전에 나온 <유물즈>라는 책은 얼마나 놀라운가. 유물들이 아니라 유물즈라는 것도 놀랍고, 유물을 헬로키티 인형쯤으로 다루는 밑받침 빼기의 수사학도 놀라웠다. 이 책을 보면 ‘낙랑 금동 곰 모양 상다리’를 소개하면서 “치열까지 세세히 보이는, 젖꼭지와 배꼽을 가진 하리보 곰돌이 혹은 베를리너의 상징 같아 보이는 이 유물이 낙랑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으로 귀여움이 증가한다”고 한 구절이 눈에 띈다. 설명을 읽은 후 다시 유물 사진을 보면 정말 귀여움이 폭발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 책은 SNS와 독립서점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으나, 소량의 부수만을 제작한 나머지 곧 절판되었고, 이를 갖지 못한 독자들은 “나만 <유물즈> 없어!”라는 탄식을 쏟아냈다. 이 소식을 안타까워한 1인 출판사 코난북스에서 재발간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유물즈>를 보다가 어릴 때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할아버지의 짧고 까끌까끌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놀던 일이 생각났다. 쓰다듬는 각도와 강도에 따라 고슴도치 털 같기도 하고, 담비 털 같기도 해서 한참을 그러고 놀았다. 지금도 그 느낌이 그대로 내 안에 살아 있는 걸 보면 낯선 것들끼리의 만남은 감각적인 첫 느낌만큼 솔직하고 깊은 것도 없는 듯하다.
요즘 책들을 보면 설마 장난이겠지 싶은 것들이 큰 호응을 얻는다. 물론 장난처럼 보이는 모습 아래엔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 답답한 틀 같은 건 제발 버리자는 진지한 의도도 읽히고 말이다. 장난스러운 책들이 더 많아져서 틀을 많이 벗겨내는 2018년이 되는 것도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저런 출판 환경의 변화가 괴롭기만 한 것일까?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다. 사실 가슴이 뛰는 변화다. ‘땅’, 즉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아니 독자가 되기. 이것이 내년을 준비하는 나의 화두다. 낮게 누워 땅 냄새를 맡으며 소중한 나의 종자들을 품어줄 땅을 찾아야겠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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