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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음악 링크나 영화 포스팅을 전달받는다. 자신이 듣고 보고 좋았던 것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의 배려다. 하나의 정보이자 취향의 전파이자 공유에 대한 감각. 그러면 나는 읽고 있는 책의 문장 하나를 보내면서, 뭔가 근사한 응대를 했다는 자족감에 젖는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우리는 특별한 재능이 없는 한 음악을 만들거나 영화를 만들기는 힘들다. 그러나 문장은 늘 쓰고 있는 것 아닌가. 수시로 쓰는 메일도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문장이 문학적이거나 인문서의 그것처럼 논리적인 수사가 되지는 못해도 문장은 누구나 쓴다.

일상적 문장을 돋보이게 하는 법이 있다. 내가 쓴 문장 사이에 낀 책의 인용구, 문장에 대해서 상대방은 특별하게 느낄 수 있다. 왜 이 문장을 골랐을까. 책의 저자는 무슨 의미로 이 문장을 구성했는가. 책의 내용과 어떤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문장을 둘러싸고 더 큰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상대방과 어떤 문장을 공유한다는 것, 그 순간에는 삶에 대한 명상을 함께하는 친구가 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문장을 두고 우리는 생각을 교차했다는 은밀한 기쁨을 누린다. 이건 문해력과는 아주 다른 차원이다.

오늘은 뉴스나 실제 삶이 더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라 이야깃거리로서 책을 읽는 것이 허무하다는 사람에게 이 문장을 보냈다. 일본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 나온 문장이다.

“읽을거리라는 것은, 살아 있는 인간에게서 이미 떠난 것이라 시들어 있습니다. 어떻게 잘못한들 독이 되지 않고 해도 되지 않지요. 기분 전환에는 안성맞춤인 데다 읽을거리를 통해서 지식이 늘면 배짱이 두둑해져서 이야기가 독이 되기 힘들어지니 일석이조죠.”

뉴스보다 소설이 더 단면적이고 평평하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또한 삶에 실제로 적용되지 않는 에피소드나 작가적 상상의 산물인 이야기를 시간 내어 읽는 것에 감흥이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갖는 근본적인 욕망, 이야기하고 이야기 듣는 활동, 또 이야기의 효용에 대해서 참으로 쉽고 적절하게 웅변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게서 떠나 있어 ‘시들어 있다’라는 표현은 꽤 깊은 내포가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읽으면서 그 이야기의 생생함에 온몸이 저릿해도 그건 이야기에 감정이입한 사람의 생생함이지 이야기가 삶 자체는 아닌 것이다.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은 세계와 관계를 이루기 위해, 우리 삶을 현실과 조화시키기 위해”라고 한 것은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었다. 이야기는 개인의 구체적인 삶을 떠나 전승되고 간접 체험이 되어 세계를 이해하게 만드는 힘을 갖는다.

뉴스가 더 재밌다는 사람에게 내가 공유하고 싶은 문장을 보내는 마음은 그러니까 너무 현실에 발목 잡혀 있지 말라는 것이었다.

뉴스를 확인하고 현실 세계를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는 따로 있기도 하다고 에둘러 말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문장들을 그대로 기록해놓는 습관이 있다.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거나 공들여 쓴 문장은 읽는 사람에게도 각별히 걸려드는 법이다. 모아놓고 보면 책을 읽고 쓴 서평이나 감상글과는 다른 맛이 있다.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잊힐 때쯤이면 그 문장들만을 다시 추려 읽어도 책 읽던 때의 풍경이 환기된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공간과 시간이 환기되듯이. 문장은 책의 주제와 밀접하니까.

읽을거리로서 책은 다양한 정보 매체에 비해 비현실적이고 더욱 무용한 물건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나마 처세나 생활 정보를 담은 책은 유용하다 할 수 있겠지만, 이 무용함을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읽다 보면 세상을 이해하게 되고 배짱이 두둑해진다’라고 하기엔 일상이 너무 버거운가. 그러면 평평하다고 느끼는 책 속의 문장들을 적어보라. 어떤 정보도 없는 듯이 보였던 책이 갑자기 삶의 금언들을 쏟아내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문장을 적다 보면 신기하게도 생각도 정리된다. 이게 일석이조 아닌가. 다시 읽게 될 문장을 얻게 되고 생각도 정리하고.

책 속 문장은 내가 쓰는 문장들 사이에서 크게 울린다. 그리고 내 문장도 때로 울리게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영역을 확장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메모장에 읽고 있는 책의 문장을 적어놓고 있다. 내일이라도 누군가에게 보낼 문장이 될 수도 있는 바로 그것을.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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