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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한 포항의 진앙 주변에서 지표 아래의 물과 모래가 솟아오른 ‘액상화’ 현상이 확인됐다. 손문 부산대 교수연구팀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지난 19일 “진앙 반경 2㎞ 지역에서 흙탕물이 분출된 100여곳의 흔적을 확인했으며, 이것을 액상화에 따른 모래화산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20일 후속조사 결과 진앙에서 4~10㎞ 떨어진 바다 쪽의 논과 백사장은 물론 일부 학교운동장과 주택가 등에서도 비슷한 흔적이 보였다. 액상화는 지진 때문에 땅속의 모래와 물이 솟아올라 딱딱하던 지반이 늪처럼 물러지는 현상이다. 심할 경우 콘트리트 건물 등 무거운 구조물은 가라앉고, 땅속의 빈 매설관 등은 부력 때문에 떠오르게 된다. 1964년 미국 알래스카 지진 및 일본 니가타(新渴) 지진 때 도로가 균열되고, 여러 항구와 대형아파트 건물이 기울어진 것이 바로 이 액상화 현상 때문이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액상화로 인한 피해건수가 무려 2만7000건에 달했다.

21일 지진 피해 이재민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텐트를 설치한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서 한 이재민이 마스크를 쓰고 서 있다. 텐트는 성인 두 명이 쓸 수 있는 크기로 4인 가족 기준 60여가구가 입주 가능하다. 체육관 내부를 소독한 뒤 설치된 텐트 바닥에는 보온매트를 깔았다. 이준헌 기자

1978년 지진 관측 이래 액상화가 동반된 지진이 일어난 것은 처음이지만 역사서에서는 심심치 않게 보인다. 1643년 5월30~6월9일 사이 경상도 초계(합천)와 진주에서 지진으로 마른 하천에서 탁한 물이 나오고, 마른 샘에 물이 넘쳤으며, 큰길이 갈라졌다는 <승정원일기> 기록이 대표적인 예다. 이같이 400년 가까이 발생하지 않던 강진이 1년 사이 두 번이나 일어나고, 액상화 현상까지 나타났다는 것은 심상치 않다. 물론 액상화 현상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대형시설물 등은 비교적 단단한 암반층 위에 건립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이번 지진으로 진앙 인근의 아파트 1개동이 기울어진 것이 액상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게다가 이번 지진으로 진원지 부근의 지반이 4㎜ 정도 상승했다고 한다. 지진이 지층의 안정성을 해친 만큼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특히 포항지역처럼 강변이나 해안 등 퇴적층의 연약지반에서 지진이 발생할 경우 액상화의 우려가 커진다. 서울과 부산, 인천 등 대도시의 강변·해안 퇴적층과 매립지에 건립된 다수의 신도시가 바로 ‘액상화의 취약지역’이다. 한국은 이미 1년 사이 규모 5.4~5.8의 강진을 두 번이나 경험하고 있다. 액상화 현상은 규모 7 이상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는 안전사회를 향해 재출발하라는 경고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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