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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갈 때면, 관람하는 주 대상이 바뀐다. 파리의 현대미술관인 퐁피두 미술관의 경우, 어느 때에는 미국적인 장면과 추상 표현을 실현한 에드워드 호퍼와 마크 로스코의 회화들을 중심으로 돌아보고, 또 어느 때에는 일상 풍경을 환각적으로 묘사한 프랑스 화가 발튀스의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관람하기도 한다. 부연하자면, 이런 것이다. 극작가 앙토냉 아르토와 작가 알베르 카뮈에 의해 발튀스의 회화 세계를 새롭게 발견한 뒤라면, 또 최근 일본의 사진작가 히사지 하라의 <발튀스 회화의 고찰>을 접한 뒤라면, 발튀스가 단연 관람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발튀스의 에로틱하면서도 섬뜩한 사춘기 소녀 연작과 기묘한 일상의 장면들은 고착된 삶의 국면들을 뒤흔들고,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이번 파리 체류 중에 퐁피두 미술관에 갈 생각을 한 것은 파울 클레의 그림들을 다시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몇 년째 유대계 독일인 미학자 발터 벤야민의 파리에서의 족적을 쫓는 과정에 그가 가깝게 지내며 경의를 표했던 파울 클레의 그림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스위스 출신의 이 화가는 음악과 그림에 공히 천부적인 재능을 물려받았고, 두 세계를 연마해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화가로 활동했다. 그의 그림들은, 전쟁 중이었음에도, 음악적인 리듬감이 선과 색으로 이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추상적이고 단순한 이미지를 형성했다. 퐁피두에 소장되어 있는 그의 다수의 그림들 ‘리듬 속에’ ‘피렌체 빌라’ ‘사슴’ 등이 그것이다.



클레의 그림 중 벤야민이 특별히 주목한 것은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1920)이다. 수채화로 그려진 천사는 곁눈질로 뒤돌아보고 있고, 앙상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려는 형상이다. 벤야민은 이 천사의 시선과 날갯짓을 통해 역사 개념에서 진보를 논하고, 미래의 희망을 설파했다. 새로운 천사는, 눈은 과거의 끝없는 자료, 폐허를 돌아보지만, 거역할 수 없는 폭풍이 미래로 등을 세차게 밀어낸 존재, 곧 역사의 진보를 이끄는 천사를 뜻한다.

프랑스에는 현재 60만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 연달아 테러의 타깃이 되면서 최근 상당수가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있다.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는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3년째 파리 연구를 이어가던 벤야민은 좁혀오는 나치의 추적을 견디다 못해 아메리카로 떠나기 위해 스페인의 국경 포구 포르부에 이르렀다가 극적인 죽음을 맞기까지 분신처럼 이 그림을 품에 간직했다. 벤야민은 이 그림과 함께 비극적 최후를 맞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이후 이 그림은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그림 중의 하나가 되었다.

퐁피두에서는 ‘새로운 천사’ 대신 ‘예언자’와 마주할 수 있다. 백색의 초상이 언뜻 외계인의 형상이다. 인류는, 역사는, 새로운 천사, 메시아는 어디로 향해 가는가. 예언자는 말이 없다.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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