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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해운대 달맞이 언덕으로 오신 것은 팔순을 넘긴 이듬해였다. 달맞이 언덕은 달이 제일 먼저, 그리고 휘영청 밝게 떠오르는 곳으로 유명하다. 달과 마찬가지로 하늘과 바다 사이, 해가 떠오르는 순간과 빛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마디로 빛이 충만한 공간이다. 엄마는 4년 반, 햇수로 5년 동안 달맞이 언덕에 머무르시다 큰 오라버니 곁인 일산 호숫가로 옮겨 가셨고, 반년 후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향년 86세, 봄이었다.

엄마가 떠나시고, 두 번의 봄이 왔다 갔지만, 아직도 나는 엄마한테 제대로 “잘 가요”라는 인사를 못 드리고 있다. 이 시대, 딸로서, 인간으로서 도리를 하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끝나지 않는 자문과 죄책감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달맞이 언덕으로 오셨지만, 내 집에서 함께 사신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엄마가 이 바닷가 언덕으로 오시기 1년 전, 서울에서 내려온 신임 교수이자 외지인이었고, 중학생 아들을 둔 엄마였고, 논문과 신작 소설을 계속 써서 발표해야 하는 연구자이자 현역작가였다. 엄마를 집에서 500m 떨어진 요양병원에 모셨다. 그리고 4년 반 동안, 매주 주말이면 엄마 곁에서 보냈다.


해무가 낀 달맞이언덕의 고층빌딩들_경향DB


요양원 시스템은 가족들의 생활을 원활하게 보장해주었다. 이곳에 엄마를 모시기 전, 십 년 가까이 전국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의 생활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엄마의 이상 행동으로 좌불안석의 연속이었다. 달맞이 언덕은 누구라도 살아보고 싶은 아름다운 곳이고, 게다가 내 곁이었지만, 요양병원에 모셨다는 사실 때문에 자식들은 죄송함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갈수록 아득해지고 혼미해지는 엄마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온갖 놀이와 재롱을 벌이고, “잘 자라”고 다독여 잠재워 드린 뒤,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내 몸도 마음도 다 무너져내렸다.

소설가는 자신이 처한 가장 절박한 현실을 어떤 식으로든 꺼내 쓸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내가 한 인간의 ‘잘 사는 법(웰빙)’보다 그 삶을 ‘잘 마무리하는 길(웰다잉)’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한 것은 엄마 인생의 마지막 시기인 4년 반의 요양원 생활을 지켜보면서였다. 이 시기 나는 ‘환대’와 ‘구름 한 점’ 등 생애 마지막 시기를 화두로 삼은 단편 소설들을 썼다. 이때 내가 가장 고통스럽게 매달린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고, 그 핵심은 인간에 대한 도리, 또는 예의, 곧 ‘윤리’였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2000년대 이후, 나뿐만 아니라 여러 한국 작가들이 이 주제에 천착했다.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 작품인 김경욱의 단편 ‘천국의 문’은 그 흐름에서 읽을 수 있는 최근작이다.

4년 반을 곁에서 보냈건만, 나는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식이다. 요양원에 모셨다는 것 이상으로 죄책감이 내 심장에 박혀 있다. 엄마 없이 맞는 세 번째 설이다. 이번 성묘에서는 “잘 가요, 엄마”라고, 미뤄온 인사를 제대로 드릴 수 있을까.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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