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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7일 목요일 저녁,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렸다. 2년 만이었다. 입국 수속을 간단히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어두웠고, 대기는 음울했다. 고속전철(RER)을 타고 시내로 향했다. 한창 이동이 많을 8시쯤이었는데, 예상외로 전철 안이 한산했다. 전철은 축구경기장 스타드 드 프랑스역에 정차했다가 출발했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짧은 사이 1월의 음습한 밤바람이 한 움큼 들어왔다 나갔다. 도심으로 들어오는 동안 플랫폼에서, 전철 안에서, 환승역 지하도에서 나도 모르게 사람들 표정을 살피고, 그림자 꼬리를 자르듯 두려움을 떨쳐 내며 걸음을 빨리했다. 예전에 하지 않던 행동이었다.

1월10일 일요일 오전 10시, 파리 10구 레퓌블리크(공화국) 광장에는 작은 가설 무대가 설치되었다. 전자 기타 사운드가 흐리고 축축한 대기를 가르며 흐느끼듯 울렸다.

이어서 72세의 샹송 가수 조니 할리데이가 읊조리듯 운을 떼었다. “수백만 사람들의 시선, 고통의 눈물, 거리의 수백만 발걸음, 1월의 어느 일요일.” 1월과 11월 테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노래였다.

원래는 2015년 테러 직후인 1월11일 일요일, 시민 연대 군중들이 대로를 꽉 메운 채 행진하고, 광장에 모여 희생자를 추모하는 마음을 기려 지은 것이었다. “나는 내 마른 손 위에 네 작은 손을 잡았지. 우리의 심장은 점점 더 빨리 뛰었지. 1월의 어느 일요일에.” 그리고 2016년 1월10일은 그로부터 1년 뒤, 일요일이었다.



노래가 울려 퍼지는 광장 하늘 위로 공화국을 상징하는 여인, 마리안이 한 손을 번쩍 치켜들고 서 있었다. 손끝으로 비둘기들이 내려앉았다 날아갔다. 마리안 발아래에는 꽃과 메모, 국기와 사진, 촛불들이 첩첩이 에워싸고 있었다. 추모장에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주민, 아이를 안고 온 젊은 부부, 여행자, 희생자 유족, 파리시장과 대통령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비장한 얼굴로 모였다. “우리는 군중 속에서 침묵하면서 걸었지.(중략) 온 나라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공포와 증오를 버리고 왔지. 1월의 어느 일요일에.”

희생자들의 이름이 광장에 새겨졌고, 추모의 나무로 참나무가 심어졌다. 무고한 수백명이 바닷속에 수장되고, 테러리스트들의 총에 잔혹하게 시민들이 희생당하고, 인류를 공멸에 빠트리는 핵실험이 자행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달래기 위해”, “공포와 증오를 버리고” 모여드는 사람들, “두렵지만, 여기에 있다!”고 연대하며 저항하는 사람들. 여기는, 광장과 혁명의 도시, 파리이다.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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