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번 정권 들어오면서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읽는 시간이 확 줄어들었다. 주간지와 일간지 몇 개가 집에 배달되어 오기는 하는데, 1주일에 한 번 손에 집어 들기도 쉽지 않다. 작년까지는 영어판 일본 신문도 배달받기는 했는데, 워낙 안 읽다보니 잠시 쉬기로 했다. 그렇다고 책을 월등하게 많이 읽느냐, 그러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마땅히 취미가 늘었거나 소일거리라도 제대로 있느냐, 그렇지도 않다. 하다못해, 사진도 올해처럼 안 찍은 해가 없을 정도이다. 봄이 오는지, 여름이 오는지, 그런 것도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현 정권이 출범하고, 나처럼 ‘멘붕’ 그리고 길고 긴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뭘 하고 싶지도 않고,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1990년대 동구가 붕괴하고 유럽에 지금과 같은 시기가 온 적이 있었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좌파들이 새로운 이정표를 잡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때 프랑스 신문 르몽드에서 마르크스 이후에 어떤 학자가 그 역할을 할 것이냐는 논의에 신문 한 면을 전부 할애한 적이 있었다. 정의론을 제시한 존 롤스와 독일의 하버마스, 이런 사람들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몇 년에 걸친 그런 논의 과정에서 젠더, 생태, 인권, 이런 새로운 가치가 노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좌파 논의의 새로운 축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새롭게 생겨난 사회적 흐름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좌파의 한 흐름을 만들고, ‘신좌파’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전면에 나오게 된다. 물론 거의 같은 시기에 좌파만 재구성이 된 것이 아니라, ‘네오 나치즘’이라는 어정쩡한 타이틀로 극우파들도 자신의 진용을 갖추게 된다. 프랑스의 대통령 결선투표에는 보통 좌우 후보가 맞붙는데, 2002년 대선에서는 우파와 극우파가 결선에서 만나게 되었다. 많은 좌파들은 눈물을 머금고 극우파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서 우파인 시라크에게 표를 던졌다.


한국은 흔히 진보라고 부르는 진영은, 어느 정도는 분화되어 자신의 길을 정립하는 유럽형 정치 지형과 유사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비록 정치적 성과는 미미하지만 녹색당도 생겼다. 반면 전통적 보수와 극우파가 분화되어 각각의 길을 걸어가는 유럽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한몸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걸 생태적 관점에서는 ‘개발연대’라는 말로 부르기도 했지만, 호남으로 가면 기존의 여야 관점과는 좀 다른 지방토호 구조가 된다. 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이미 집권을 했고, 그때 생겨난 폐해를 지적하면서 신좌파가 등장한 유럽의 흐름과 달리, 우리는 노동자가 집권하고, 그들이 부패해서 대안이 필요해진 역사 자체가 없다. 경제가 압축성장이었다면, 사회적 분화도 압축적이기까지 하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그렇게 연이은 정치의 계절 앞에서 유일하게 미래를 차분히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2015년, 내년이다. 선거는 블랙홀이라서 새로운 얘기를 꺼내기가 어렵다. 바로 내년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백가쟁명처럼 논쟁할 수 있는 시기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내년이라는 그 유일한 개방공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게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는 가을, 내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생태주의든 페미니즘이든, 깊이 고민을 해보면 좋겠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미래는 무엇인가? 신좌파들의 고민이 이 가을에 시작되어야 한다.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