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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아 사회부장
홀가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TV에 나와 “제가 어제 오후 5시12분 국방부 장관에게 구출작전을 명령했다”고 한 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아주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나 역시 ‘면제’인 처지라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 틀고 있을 콤플렉스가 짐작이 돼서다. ‘막타워(11m 높이 모형탑)’ 한 번 안 타본 주제에 남자들 앞에서 ‘대포병 레이더’나 ‘K-9 자주포’를 읊을 때면 사실 얼마나 오금이 저렸던가.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이 수술을 받은 뒤 인공호흡기를 단 채 안정을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작전 직후 합동참모본부는 브리핑에서 ‘완벽한 성공’을 자랑하며 석 선장의 부상 정도에 대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로 간단히 넘어간 터다. 분노와 동시에 자괴감이 들었다. 20년 넘게 신문사 밥을 먹고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한마디에 안심한 나는, 기자인가.
정작 의료진은 닷새 만에 출발
23일, 회사에 나와서 관련 기사들을 챙겨봤다. 석 선장은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하고(정부 신속대응팀의 표현에 따르면 ‘수면상태’) 있었다. 뿐만 아니라 추가 수술도 받아야 한다고 했다.
24일부터 25일 아침까지, 석 선장 가족에 대한 보도가 잇따랐다. ‘부인 최진희씨는 처음엔 남편의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해 안심했는데, 건강이 악화됐다는 보도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최씨는 남편이 치료받고 있는 오만으로 가고 싶다는 뜻을 수차례 선사인 삼호해운 측에 전했다. 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다.’
25일 낮, 외교통상부와 삼호해운은 “최씨 등 석 선장의 가족 2명과 한국 전문 의료진이 오늘 밤 오만 살랄라를 향해 출발한다”고 발표했다. 전문 의료진은 석 선장이 장시간 비행을 견딜 수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될 경우 환자 이송 전문 비행기(에어 앰뷸런스)를 동원해 이르면 이번주 안에 한국으로 이송할 것이라고 했다.
석 선장이 총상을 입은 지 닷새 만의 결정이었다. 외교부와 국토해양부 공무원, 언론사 기자들은 이미 오만 현지에 도착했는데, 가장 먼저 배려했어야 할 가족과 최우선적으로 보냈어야 할 전문 의료진은 닷새 만에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그 사이 석 선장은 먼 이국 땅에서 고독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군 당국은 “석 선장이 ‘아덴만 여명 작전’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찬사를 되풀이했다. 합참에 따르면 그는 삼호주얼리호가 해적들에게 납치된 직후부터 청해부대 최영함의 추적과 구출작전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배를 ‘지그재그’로 몰거나 소말리아 쪽으로 가는 대신 반대 방향으로 운항하고, 해적들의 눈을 피해 우리말로 최영함과 교신했다. 엔진오일에 물을 섞어 기관을 고장내는 방식으로 몇 차례나 배를 공해상에 정지시키기도 했다. 그 때문에 구출작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해적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해 무릎과 어깨 등에 골절상을 입고, 작전이 시작된 뒤엔 해적에게 ‘조준사격’을 당했다고 한다.
석 선장을 한 번 만나본 적도 없는 수많은 이들이 그의 쾌유를 비는 사이, 정부는 무엇을 했던가. 석 선장을 ‘아덴만의 영웅’으로 만들고, 작전 장면이 생생히 담긴 동영상이나 청해부대원들의 수기까지 공개해가며 ‘마케팅’을 하는 데 바빴다. 그들이 승리의 기쁨에 들떠 혁혁한 전과를 과시할 때, 석 선장의 부인 최진희씨는 울고 있었다.
정부는 그 부인에게 사과해야
25일 오만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최씨는 “제발 남편과 함께 무사히 몸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이야기했다.
정부가 승리를 완성하고 싶다면, 그녀에게 “처음에 부군의 건강상태를 정확히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사과하고 위로해야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녀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그게 국가다. ‘아덴만 여명 작전’은 국가란 무엇인지, 정부의 존재 의미는 어떤 것인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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