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복지국가가 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북유럽 같은 고부담·고복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중부담·중복지 사회가 우리의 목표라고 가정해보자. ‘얼마’가 필요할까. 2019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공적사회지출은 12.2%로 예전에 비하면 많이 늘었지만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에서 네 번째에 머물고 있다. OECD 평균이 20%이고 가장 많이 쓰는 나라들은 30%까지도 쓰고 있는데, 중부담·중복지를 하려면 평균 수준인 20%는 되어야 할 테고, 지금보다 8%포인트 정도 복지지출이 더 늘어야 한다. GDP 대비 8%면 어마어마한 돈이다. 2021년 우리나라의 GDP는 1조8000억달러로 추산되는데, 그 8%면 1440억달러(약 170조원)라는 돈을 추가로 복지에 써야 겨우 중부담·중복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2021년 현재 한국의 인구는 약 5200만명인데, 미성년자 860만 명을 빼면 성인 인구는 4340만명이다. 중부담·중복지를 위해 필요한 추가 비용을 모든 성인이 똑같이 나눠서 낸다면 한 사람당 392만원씩을 더 내야 한다. 이게 가능할까? 물론 불가능할 것이다. 수입이 없는 은퇴자에게도, 80세 넘은 어르신에게도, 학생에게도, 실업자에게도, 중부담·중복지를 해야 하니 해마다 392만원씩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본격적으로 ‘누가’라는 질문이 대두된다. 소득 상위 50%의 사람들이 낸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한 사람당 784만원이 된다. 2021년 4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이 월 487만원인데, 두 달 치에 해당하는 소득을 추가 세금으로 걷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재명 후보가 국토보유세 과세 기준으로 제시했던 상위 10%가 낸다면 한 사람당 3920만원씩이다. 문재인 정부가 종부세 대상으로 삼았던 상위 2%가 낸다면 한 사람당 1억9600만원씩이다. 그것도 해마다. 30억 자산가도 10년이 못 가 알거지가 될 것이고 그러면 세금 낼 사람은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된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아무도 묻지 않는 것은 ‘왜’라는 질문이다. 보통은 소득이나 자산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누진세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부자이면 왜 남들보다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아야 하는지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누진세는 엄밀히 따지면 헌법상 평등권을 위배하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여러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누진세가 필요하기 때문에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완화하는 것이다. 누진세는 당연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당연하지 않은 걸 받아들이게 하려면 사회적 합의와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서구의 역사를 보아도 누진세는 당연히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절실한 사회적 필요 때문에 세금을 내는 당사자들을 설득한 끝에 도입되었다. 전쟁에 목숨을 바치는 국민의 희생에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더 많은 세금으로 기여하기로 한 것이다. 설명도 합의도 없이 부자니까 더 내라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복지지출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의료와 연금이다. 한국처럼 빠르게 고령화하는 사회에서 가장 빨리 늘어날 항목들이다.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우리가 처한 상황과 미래 예측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해와 합의를 구하고, 모두가 조금씩 더 기여해줄 것을, 그리고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더 많이 기여해줄 것을 호소해야 한다. 우파 포퓰리스트는 이런 사정은 짐짓 모른 체하고 세금을 깎아주겠다고만 말한다. 사회는 각자도생의 아수라에 빠진다. 좌파 포퓰리스트는 부자에게 걷으면 된다고 말한다. 앞서 계산해 보았듯이 부자에게 아무리 많이 걷어도 필요한 돈에는 턱도 없이 부족하고,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나라는 계층 갈등의 전쟁터가 된다. 이렇게 시간만 보내면 고령화는 더욱 진전되고 모든 부담은 미래의 경제활동 인구인 젊은 세대에게 떠넘겨질 것이다. 세금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것, 사회의 지속가능성의 문제라는 것, 사회구성원 간 연대의 문제이고 복지국가의 문제라는 것을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의 세금을 대하는 자세를 눈여겨봐야 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