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이와 함께 ‘녹색성장’과 ‘공정사회’도 이명박 정부의 국정이념을 상징하는 용어로 활용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측면, 사회통합적인 측면을 아우르는 이 세 단어는 어느 정권이나 정당이든 부정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 여당 단독 예산안 강행 처리,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으로 촉발된 국가의 안보위기, 행복도시 수정안의 졸속 입안과 폐기, 민간인과 정치인에 대한 불법 사찰과 국가인권위원회의 파행 등 올 한 해 동안의 굵직한 사건들과 겹쳐보면, 이 용어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사찰·인권 후퇴’ 품격과 거리 멀어
국격, 즉 나라의 품격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라도 품위와 격조를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품격을 갖춘 사람을 존경하듯, 품격을 갖춘 나라도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돈이 많고 잔치를 많이 벌인 사람을 존경하지 않듯이 국가의 경제력이나 국제회의 개최만으로 국가의 품격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고 국민의 인권이 보호되고 문화와 가치를 중시하는 국가가 품격있는 국가가 아닐까?
지난 12월8일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는 309조원에 이르는 2011년 예산안이 날치기로 처리됐다.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었고 폭행까지 벌어져 해외토픽으로 전세계에 전송됐다.
예산안과 함께 처리된 의안에는 친수구역특별법뿐만 아니라 국립대학교의 위상을 변경하는 서울대법인화법, 대한민국의 군대를 아랍에밀레이트(UAE)에 파병하는 해외파병동의안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고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전문가들이 수없이 문제제기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고 자국의 군인을 해외로 파견하는데 국회에서 논의조차 없이 강행된 국가를 어떤 나라, 어떤 국민이 품격이 있다고 할 것인가?
12월 26일 서울대 법인화법 폐기를 촉구하며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한 국가의 인권수준은 국가의 품격을 측정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이다. 국가의 인권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가 대부분의 상임위원들과 자문위원들이 사퇴한 가운데 인권상마저 수상자들로부터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그동안 엠네스티와 같은 세계인권기구나 국제언론단체에서는 수없이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 수입쇠고기반대를 위한 촛불집회의 강제진압과 연행, 용산참사로 대표되는 폭력적인 재개발 철거와 인명 희생, PD수첩 담당 PD에 대한 수사, 미네르바 박대성씨를 비롯한 인터넷 기고자에 대한 인신구속 등에 대한 비난이었다.
마침내 미네르바를 구속했던 전기통신법 조항은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이 내려졌고, PD 수첩팀들도 무죄선고를 받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가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통해 사후에 구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두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얘기할 수 없으며, 국가의 품격을 논할 수 없다.
‘사람’에 배려 없인 공정사회 헛구호
녹색성장은 2005년 서울에서 열린 제5차 환경과 개발에 관한 아태지역 장관회의에서 경제성장과 환경적 지속가능성 간의 상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 사용된 개념이다.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경제와 환경문제간의 협력을 강조하는 이 개념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이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그동안의 경제성장이나 개발 과정에서 드러났던 환경파괴와 사회적 형평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경험을 후진국에게 전수하고 전세계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처한다는 점에서 녹색성장정책은 매우 의미있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는 ‘신성장동력’ 산업 육성정책과 ‘4대강 정비’ 등의 건설 분야 사업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세계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긴급 경제활성화 대책과 맞물려 그린뉴딜로 발표된 이 정책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을 축소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토목사업에 녹색포장지만 덧씌운 꼴이 되고 말았다.
1992년 리우에서 개최된 세계환경정상회의에서 합의한 지속가능한 발전은 환경적 건전성과 경제적 효율성, 사회적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개념이었으나, 정부가 추진 중인 녹색성장은 경제적 측면을 강조한 반면 환경적인 측면이나 사회적 통합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녹색성장이 환경파괴사업인 4대강 사업을 대표적인 사업으로 추진하는 이상 녹색성장은 토목사업을 정당화하는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지난 27일 국토해양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론에 비유하고, 4대강 사업이 국토개조의 대역사임을 강조했다.
국토개조론은 1972년 일본의 다나까(田中) 수상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추진했던 일본열도개조론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국토전체를 개발열풍으로 몰아넣어 90년대 초반이후 부동산 거품붕괴로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시민들은 이날 19일째 4대강 반대 농성 중인 환경운동가들을 격려하는 의미로 손수건을 들었다. <여주 | 김정근 기자 >
올 한해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로 시드니 샐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선정됐다. 결코 쉽지 않은 철학서의 독자층이 이렇게 넓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정의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집권 후반기 국정아젠다로 공정사회를 내건 것은 올바른 방향설정이라 할 수 있다. 경쟁력이나 성장이 아니라 새삼 정의나 공정사회를 내건 것은 우리시회에서 가장 취약한 저소득층, 낙후지역, 중소기업에 대해 더 많이 배려하는 정책을 펼치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것이다.
사회취약 계층과 지역, 기업에 대한 배려는 구호나 홍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산을 투자해야 비로소 실행될 수 있다. 그러나 2010년 예산 기준으로 국가채무는 407조원으로 GDP 대비 36%를 넘어섰으며 2015년에는 500조에 이를 전망이다. 앞으로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라 복지지출 수요는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최근의 한반도의 안보위기는 국방예산의 확대까지 필요로 하고 있다. 여기에 전세난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주거불안정과 사교육비 문제는 저출산을 더욱 구조적인 문제로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람에 대한 획기적인 재정지출이 불가피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일자리창출을 위한 경제재도약 세제’를 통해 발표한 이른바 부자감세정책을 이번에 강행처리한 내년도 예산안에서도 변경하지 않았다.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재정균형을 달성하면서 확대되는 재정지출 수요에 충당할 수 있는 방법은 증세와 토건사업부문에 대한 축소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는 감세정책 기조와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토건사업 예산을 건드리지 않는 상황에서 복지예산 축소라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것이 예산날치기 통과라는 형태를 통해 실행에 옮겨지게 된 것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없는 공정사회는 공허하다. 사람에 대한 배려없는 공정은 정의롭지 못하다. 4대강 사업이 녹색사업인지, 재난방지와 물부족 해결을 위한 유일한 대안인지의 논란은 접어둔다고 할지라도 왜 4대강 사업을 2012년까지 완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최소한 해명을 해야 한다.
또한 이 사업이 완료되었을 때 청계천이나 한강정비사업 처럼 외형적으로는 번지르르한 모습을 띠게 될지라도 이 사업이 영유아 예방접종 지원이나 저소득층 아동의 급식지원, 하위 소득 가구들을 위한 양육지원금, 대학생들의 학자금 융자에 대한 이자대납 지원, 중소기업에 대한 긴급 경영안정자금 지원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저소득층, 청년, 중소기업과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지원을 줄이면서 공정한 사회를 주장할 수 없다.
지난 6·2지방선거를 통해 독선적인 국정운영을 견제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대를 요구하는 유권자들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뉴타운으로 대표되는 개발공약이 대세를 결정했던 2006년 지방선거와는 달리 무상급식과 보육, 교육과 같은 사람에 대한 투자 확대 공약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열망과 호응은 천안함 사건으로 대표되는 신북풍을 극복한 유권자들의 힘의 원천이 되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토건사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는 주택공급 과잉, 생태환경의 파괴, 사업성 부족으로 인한 기업과 은행의 파산, 시설의 유지와 관리운영을 위한 재정부담을 낳게 된다. 진정으로 녹색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토건사업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정답이다.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는 사람을 배려하고 사람이 존중받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이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줄 알고 세대를 위해 투자할 줄 아는 사람이 존경받듯이 이런 국가가 품격있는 국가일 것이다.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전, 파워 업그레이드? (1) | 2011.01.07 |
---|---|
[세밑 릴레이 기고]⑤자,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2) | 2010.12.31 |
[세밑 릴레이 기고]③물은 밑에서부터 차오른다 (2) | 2010.12.31 |
[세밑 릴레이 기고]②한국 민주주의의 ‘장두노미’ (2) | 2010.12.31 |
[세밑 릴레이 기고]①분쟁의 2010년을 넘어, 평화의 위기를 넘어 (2) | 2010.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