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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맨 먼저 구조선에 오른 선장과 11명의 선원들은 안전행정부 구조자 명단에 ‘일반인’이라고 기록돼 있다. 거짓말을 했거나 최소한 신원을 밝히지 않고 위장 탈출한 것이다. 항해 중 선박에서 선장은 최종적 결정권과 명령권을 가진 전형적인 통치권자에 해당한다. 일찍이 플라톤이 위기 시 모든 구성원이 그 명령에 따라야 할 정당한 전제자로 묘사한 역할이 난파선 선장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선장은 1년 기간의 계약직으로 밝혀져 목숨 걸고 책임을 다하기엔 억울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수백명을 태우는 배의 선장을 그렇게 임명한 선사가 이 문제에도 큰 책임이 있다. 선사는 또 보통 20년으로 제한해 온 배의 운항연한을 고려하지 않은 채 18년 된 세월호를 사들여 7년간 더 연장했다. 조타 키가 평소보다 턱없이 많이 돌아갔다는 조타수의 증언 등이 노후 선박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 배경에는 돈벌이만 중시하는 기업의 윤리부재를 방조한 정책당국이 도사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 문제였다.
그런가 하면 한 자칭 민간인 잠수사는 해양경찰 측이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고 했다고 종편방송과 인터뷰한 후 잠적했다가 경찰에 자진출두했다. 경찰이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수사 중이다. 방송 제작진이 출연자의 인적 사항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그 발언을 내보낸 책임이 크다. 선정주의 방송의 폐해가 이번에도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신문들도 인명구조에 집중해야 할 사고 다음날부터 피해유족이 받을 보상액을 다루어 빈축을 샀다.
상당한 게이트 키핑 장치를 갖춘 기성 언론들이 그럴진대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경우 개인 의사가 여과 없이 공론장에 표출되는 것은 대책 부재다. 그렇다고 해서 SNS를 문제시하고 억압하려 한다면 우리의 디지털 문화는 더욱 후퇴한다. 부작용이 있다는 이유로 본질을 훼손하는 교각살우의 오류를 범해선 안된다.
자유로운 사이버 공간에서 민심의 한 모습을 읽을 필요가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초등학생이 보냈다는 “배 안에 우리가 살아 있으니 빨리 구조해 달라”는 SNS는 구조작업을 신속하게 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영향받았을 것이다. 거짓말과 장난질로는 불행한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할 인터넷윤리 교육의 문제다.
다만 정치적 저의를 품은 왜곡과 공동체윤리 파괴행위로 사회 갈등을 극단화시키는 집단은 디지털 영역에서 철저히 차단하고 해체시켜야 한다. 세월호 피해가족들을 ‘유족충’이라는 저급하고 야만적인 어투로 지칭하는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집단은 과연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인가. 그들이 공격하는 이유는 피해유족들이 정부의 무능대처에 대해 비판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이 정부를 편들어준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일베의 사실왜곡은 ‘선장과 선사가 전라도인이며 전라도 회사’라면서 특정지역을 비하하는 데서 극에 이르렀다. 선장은 부산 출신이었고 선사는 인천에 소재했다. 일제하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이 방화했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학살 등 야만적 행위를 자행했던 일본인들과 다를 게 무엇인가.
우리의 디지털정책은 지나치게 산업기술 성장과 행정편의주의 일변도로 줄달음쳐 왔다. 마치 경제개발 연대에 성장만을 목표로 분배와 복지를 도외시했던 것과 비슷하다. 사이버공간의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 성찰해야 할 공공정책의 철학이 턱없이 부족했다. 지난번 신용카드사들의 개인정보 유출사태도 그것이 누적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로 불운하게도 슬픔을 겪는 피해가족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한국 누리꾼들의 무분별한 SNS 활동에 대해 세계의 언론이 지켜보고 있다. ‘이상한 인터넷강국’이라는 오명을 더 이상 뒤집어써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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