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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 서울 사람은 물론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가 아는 노래, ‘서울의 찬가’ 첫 소절과 마지막 소절이다. 패티김이 이 노래를 발표한 1969년의 서울은 종이 울리고 꽃이 피며 새가 우는 목가적인 도시가 아니라 망치 소리가 울리고 나무들이 뿌리 뽑히며 새들이 떠나는 개발의 도시였지만, 그래도 이 노래는 이후 오랫동안 ‘서울살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보편적 욕망을 표상하는 노래로 널리 애창되었다.
6·25 전쟁의 포성이 멎었을 때, 서울 인구는 100만명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런데 ‘서울의 찬가’가 나왔을 때 서울 인구는 이미 500만명에 육박했고, 그 3년 뒤인 1972년에는 다시 600만명을 넘어섰다. 서울의 인구 팽창은 그 뒤로도 20년 가까이 지속되어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는 1000만명에 도달했다. 한 세대가 조금 넘는 기간에 한 도시의 인구가 10배 가까이 증가한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희유한 사례다. 이 엄청난 속도의 인구 증가는 당연히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이주한 결과다. 노랫말처럼 서울이 ‘아름답고 살기 좋아’ 이주했든, 아니면 그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주했든 이 이주민들이 ‘개발시대’ 서울시민의 주력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고향을 따로 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고향에 내려가서는 ‘서울 사람 다 되었음’을 자랑하면서도 서울에 올라와서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중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해마다 명절이면 하행선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는 자동차 행렬과 기차역 매표소 앞에 장사진을 치는 사람들은 서울시민 다수의 내면에 자리 잡은 이 이중 정체성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진짜 정을 붙인 땅은 어디일까?
서울의 찬가 노래비 제막(1995년) (출처 :경향DB)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 그것은 거짓말 향수를 달래려고 술이 취해 하는 말이야. 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1972년 김상진이 발표한 노래 ‘고향이 좋아’의 가사 일부다. 이 시대 서울시민들은 ‘서울에서 살렵니다’와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사이에서 전혀 이율배반을 느끼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서울에 관해 강연을 할 때면, 청중에게 종종 “서울에서 돌아가시고 싶습니까?”라고 짓궂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럴 때 돌아오는 반응은 주로 씁쓸한 웃음이다. 오랫동안 평범한 서울 사람들의 소박한 꿈은, 일할 수 있는 나이까지는 서울에서 살며 돈을 번 뒤 고향이나 교외에 그림 같은 전원주택 한 채 지어 평온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서울은 살고 싶기는 하되 죽고 싶지는 않은, 그런 도시였다. 속되게 표현하자면, 대다수 서울시민에게 서울은 ‘한탕 하고 튀는’ 도시였다. 서울이 아무리 망가져도, 그들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있었다.
거리를 지나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경축, 안전진단 통과’라 쓴 현수막이 나붙은 걸 볼 때가 있다. 물론 여기서 ‘안전진단 통과’는 안전하지 않다는 진단을 받은 걸 말한다. 자기 집이 곧 무너지게 생겼다는데 그게 좋다고 경축 현수막을 내거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이게 정상적인 세상인가? 몇 년 만에 찾은 고향 마을 정자나무가 사라진 걸 보곤 마음 아파하면서, 정작 자기 사는 동네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목이 있으면 그까짓 나무가 뭐 중요하기에 건축물 고도 규제를 받아야 하느냐고 펄펄 뛰는 사람도 많다.
1988년 1000만명을 넘은 서울 인구는 그 이후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정체 상태에 있다. 지금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 대다수의 고향은 서울이다. 그들에게는 서울 말고 달리 마음 붙일 고향이 없다. 게다가 지금의 서울은 저개발도시가 아니라 과잉개발도시다. 그런데도 선거 때만 되면 이런저런 개발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에게 눈이 돌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제는 자기 아이들에게 서울을 고향답게 만들어 물려줄 생각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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