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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을 하던 아이가 올해 3월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이 둘만의 홈스쿨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인데, 홈스쿨에서 아빠의 역할이 없다시피 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학교에 보내지 않고 아이를 키워보고자 했던 지난 5년의 시도는 잠시 유보되었다. 언제, 어떤 식으로 다시 시도하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학교에 보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학교에 가게 되면서 준비할 게 많았다. 가방을 새로 샀고 연필도 종류별로 준비했다. 노트와 알림장 또한 준비해야 해서 아이 손을 잡고 문방구에 오랜만에 가기도 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각종 캐릭터 상품이 종류별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앙증맞은 캐릭터 상품들이 아이의 작은 호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이것저것 고르는 거리낌 없는 손길이 이어졌다. 아이는 내가 추천하는 물건보다 제 눈과 마음에 드는 것을 고집하고 있었다. 아이들 입장에선 품질이나 기능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주 보고 익숙한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는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노트도 종류별로 구분하고 알림장엔 자기 이름을 썼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트위터를 보는데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문방구에서 샀다는 노트 한 권이었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 스프링철을 한 노트였다. 가끔 고3 수험생 교실에 급훈으로 붙어 있다고 들었던 저 글귀. 상품으로 변한 채 우리 아이들 곁으로 돌아온 노트를 근 20년 만에 봤다.
궁금한 나머지 노트 제작 회사를 검색해 봤다. ‘성적 떨어졌을 땐 이빨 보이지 않습니다’ ‘니 얼굴이면 공부 레알 열심히 해야 해’라고 쓰여 있는 비슷한 제품이 많았다. 더구나 이런 제품들이 인기 상품 목록에 떡하니 이름이 올라 있었다.
재미로 넘기기엔 종류가 너무 많았고 패러디로 취급하기에도 수요자를 생각하지 않은 저급한 물건으로 보였다. 스프링 노트를 찍고 철하고 비닐을 씌웠을 노동자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저 글귀들은 단순한 재미일까 혹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일까.
철도민영화에 맞서 파업을 벌이던 철도노조 조합원 자녀에게 코레일 측에서 문자를 보낸 사건이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까지 문자가 전달됐다. ‘불법파업을 중단하고 회사에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문자를 본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코레일은 해명했지만 아이 마음에 남긴 멍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물색없는 어른들의 이 같은 행위는 코레일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쌍용차 파업이 끝나자 평택 어느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손을 들어 아버지의 파업 참가 여부를 조사한 적이 있다. 쌍용차 조합원의 아이는 분위기가 이상해 손을 들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행이다. 우리 반엔 빨갱이가 없어서”란 말을 했다고 한다.
도대체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으면 한다는 것인가. 노동 관련 교육이 전혀 없는 한국 사회에서 반노동 교육은 다양하게 진행된다. 얼핏 설핏 지나가는 이야기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비하가 끊이지 않는다. 이제는 노트 한 권까지 대놓고 노동자를 깎아내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철도노조 전 간부 두 명이 수색역 내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출처: 경향DB)
오늘도 아이는 노트를 가방에 넣고 등굣길에 나선다. 알림장에 쓴 숙제는 다 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곤 한다. 아직 학교가 낯설고 줄을 서서 먹는 급식도 어색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차츰차츰 적응하는 것을 보며 안심하는 나를 본다.
아이가 적응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 편하자고 아이 등을 떠밀고 있는 건 아닐까. 사회 모순과 구조를 바꿔보겠다고 5년째 해고 싸움을 벌이면서도 아이가 무방비의 구조 속으로 매일 등교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학교 교육의 현실을 핑계로 또 하나의 현실을 아이에게 종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다. 이 아이가 보게 되는 현실과 전해 듣는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걱정도 앞선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노동자가 이 시대의 주인이라는 것과 얼마나 당당한 직업인지를 알려주는 교육이 시급해 보인다. 젊음의 노트에 아이들은 지금 무엇을 쓰고 있을까.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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