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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방문을 살며시 열어본다. 내 아이가 어두운 바닷속에 가라앉은 ‘난파선’이 아닌 자신의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이내 죄스러운 마음이 엄습한다. 여객선 세월호에 갇혀 있는 학생들이 나의 아이들이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자식의 생사를 모르는, 혹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자식을 안은 부모의 마음을 무슨 말로 표현할까. 매일, 매순간 보고 있을 때에도 부모의 마음은 애달프고 간절하다. 애써 아닌 척해도 그러하다. 때때로 엄하게 꾸짖고 나서는 속이 상해 몇 날 며칠 밤을 뒤척인다. 한참 지난 후에도 혼냈을 때 풀 죽은 자식의 모습이 떠오르면 남몰래 눈물 흘리며 아파하기도 한다.

자식은 언젠가 자신의 꿈을 향해 부모의 품을 떠날 독립된 존재이다. 때가 되었는데도 떠나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자식이다. 그런데도 자식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면, 살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삶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부모이다. 세월호의 침몰은 정확히 그런 부모의 마음 한가운데 시커먼 대못을 박은 것이다.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할 고통을 안겨준 것이다.

배의 앞머리만 드러내놓고 있다 끝내 가라앉은 세월호 사고를 보며 무슨 사색과 말을 하겠는가. 영혼과 정신이 빠져나가 스르르 무너져내린 거죽이 된 느낌에 사로잡혀 그저 침묵할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침몰한 지 하루가 지난 어느 순간부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잠든 내 아이를 보며 안도의 숨을 쉬는 것조차 죄스럽게 만드는 이 땅의 삶에 대하여. 그리고 그 삶을 지배하고 있는 어떤 힘에 대하여.

도대체 그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이라고 불리는 이 땅에 세월호 침몰과 같이 부모의 마음에 대못질을 해댄 참사는 처음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만 봐도 그렇다. 1994년에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있었다. 등굣길의 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

안산 화랑유원지,촛불 든 시민들(출처 :경향DB)


이 사고로 딸을 잃은 한 아버지는 몇 년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학여행과 수련회로 한정해도 참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99년 어린 유치원생들의 생명을 앗아간 씨랜드 화재 사고가 있었다. 전직 필드하키 국가대표 선수였던 한 어머니는 아들을 잃고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을 반납한 후 대한민국을 떠났다.

세월이 흘러 국민 안전을 강조하며 안전행정부로 부처 이름까지 바꾼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사고는 이어졌다. 고교생과 대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지난해 7월의 안면도 해병대 사설캠프 사고와 올 2월의 경주 마우나 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가 그것이다. 어찌 생겨먹은 힘이길래 이리도 질기게 반복해서 자식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부모들이 자식의 뒤를 따르거나 조국을 등지게 한단 말인가.

세월호의 침몰을 보며 확인하였다. 그 힘은 ‘선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무능’이라는 것을. 선장임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영 젬병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세월호의 침몰은 선장의 자리에 있는 이들이 각종 재난재해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하기 위한 어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구조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먼저 배를 버리고 탈출한 세월호의 선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에는 ‘더 높은 선장들’이 있다. 중앙대책본부만 해도 많은 선장들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대책본부는 구조 및 승선 인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더욱 더 높은 선장, ‘법조인 출신’ 정홍원 국무총리가 직접 지휘하는 범정부 대책본부를 구성했다.

어떤 직업과 직종이었든지 정홍원 총리가 잘해 내기를 바란다. 하지만 묻자. 대한민국에 재난재해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룰 선장은 없단 말인가. 또다시 훈련받지 못한 선장의 무능을 보고, 또 한 번 부모들의 마음을 부서뜨릴까 우려가 되어 던지는 물음이다. 부모들이 바라는 선장은 더 높은 지위의 선장이 아닌, 더 유능한 선장이라 생각되어 던진 물음이다.

정말로 대한민국에 ‘진짜 선장’은 없는가.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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