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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2주가 지났다. 전국이 통곡하는 상갓집으로 변했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분향소로 무사생환을 바라는 기도의 공간이 돼버렸다. 절대적 구조의 시간인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고 ‘에어 포켓’에 한 줄기 희망을 걸고 있다. 설령 세월호에 에어 포켓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생존 가능성을 좀처럼 예견할 수 없다. 이 비극의 상황 앞에 어떤 말도 위로는커녕 무력하기만 하다. 2014년 4월16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피해는 줄일 수 있었을까. 시간만 되감으면 되는 것일까. 언론은 사고 초기 대형 오보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저널리즘의 수준을 끝없이 끌어내렸다. 결국 육지에도 아주 작은 에어 포켓마저 남아 있지 않고 숨 막히는 시간만이 무력하게 지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위기 대응은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를 정치적 사건으로 규정하기에 충분하다. 존재하지 않는 컨트롤 타워를 탓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 정도다. 구조의 의지는 물론 생존자를 향한 그 흔한 전시 행정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다.” 2004년 김선일씨 피살 사건 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한 발언이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레토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것이 이번 사고로 확인됐다. 상대를 물어뜯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호출될 뿐 일상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언제나 뒷전이다. 아니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장관들의 아무 생각 없는 행동과 발언들이 하루에도 몇 건씩 언론을 장식한다. 그 중심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권력 구조로서의 대통령은 이 모든 사건과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나 구조 작업에 나선 일선 공무원들을 향해 “책임을 묻겠다”는 번지수 틀린 단호함만을 보일 뿐이다. 정작 대통령인 자신의 책임은 말하지 않고 있다. 자본을 위한 규제 완화와 민영화 그리고 비정규직화는 이번 사고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번 사고는 무능과 무책임의 문제를 넘어 그들의 세계관이 빚은 필연적 재앙이다.


재벌 아들이란 자의 ‘미개 국민’ 발언이 튀어나온 것은 실수가 아니다. 평소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이다. 집권 여당의 최고위원과 국회의원들의 잇따른 색깔론은 촌각을 다투는 생명보다 정치적 득실이 우선한다는 그들의 신념체계가 작동하고 있는 결과다. 구조의 ‘의지’조차 느껴지지 않는 정부의 이 같은 행태는 그들의 저의를 의심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세월호 침몰 이후 너무 많은 사건이 사건을 덮는다. 가치관의 충돌이며 그들 세계관의 돌출이다. 사건을 되돌린다 하더라도 그들의 세계관이 변하지 않는 이상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대중공업에서 최근 두 달 사이 7명의 노동자들이 숨졌다. 쌍용차에서는 정리해고 소송에서 승소한 노동자가 공장 복직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25번째 희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산업재해 사망 부동의 1위 대한민국과 세계 장애인의날에 최루액을 덮어써야 하는 현실은 어떤 개선도 없이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권력과 자본을 틀어쥔 그들의 세계관을 본다. 진정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담보야말로 그들의 세계관이 균열을 보일 때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확신을 강화한다. 정치적 역풍을 우려해 착한 말, 고운 말만을 찾고 있는 무력한 야당이야말로 그들의 세계관을 뒷받침할 뿐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실종자의 무사생환을 위해 그리고 남은 이들의 온전한 삶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세계관에 균열을 내고 그들의 신념체계를 무력화시키는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비극만이 무한 반복될 것이다.

그들의 세계관을 부숴버리자!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이창근 | 쌍용차 해고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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