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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평화활동을 하고 있는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래전부터 후배가 하는 활동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뤄지던 터였다. 후배는 4월에는 자기가 ‘감옥’에 가야 할지 모르니 조만간 인터뷰를 끝내자고 말했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하고 있는 강정마을에 3억원 넘는 벌금이 나와 노역을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 엄청난 벌금에 자기도 일조했기 때문에 몸으로 보태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난주에 강정을 다녀왔다. 공사장은 철통같이 봉쇄되어 있었고 상당히 공사가 진행되어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해 활동가 등은 매일 오전 11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한다. 미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공사장 입구에 손을 잡고 늘어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올레길이 있는 곳인지라 지나가는 관광객들 중에는 시끄럽다고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었다. 한 중년의 남성은 불쑥 내게 얼굴을 디밀고는 “돈 받고 하십니까”라고 비웃으며 지나가기도 했다. 내가 황당해하자 지킴이들이 별의별 사람들이 많다면서 외려 맑게 웃으며 위로해줬다. 평화가 무엇인지, 평화의 힘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 평화의 얼굴은 저런 수많은 모욕과 멸시, 그리고 탄압을 이기며 만들어진 단단한 것이었다. 마을 어귀에는 강정을 지키려다 감옥에 간 분들의 이름과 강정과 함께 싸우다 기소되고 처벌된 사람들의 이름이 길게 적혀 있다. 지난 26일 출범한 강정법률지원모금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7년간 강정마을에서 체포·연행된 사람은 663명, 누적 구속자 38명, 재판 결과 형이 확정된 사람 230명, 벌금 액수는 3억원이 넘는다’. 활동가들은 이 중에서 가장 악랄한 것이 벌금이라고 말한다. 이제 데모를 하려 해도 돈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게 되었다며 허탈해하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주민들 기자회견 (출처 :연합뉴스)
강정뿐만이 아니다. 권력의 부당함에 항의하는 곳이라면 어디나 벌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가장 잔인한 수단은 최루탄과 강제진압이 아니라 손배소와 민사소송, 벌금이다. 쌍용자동차 파업으로 노동자들에게 부과된 손해배상금이 47억원이었다. 다른 사회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규모가 작고 상대적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는 사회운동일수록 벌금과 같은 경제적 탄압은 그 효과가 엄청나다. 경제적 능력을 완전히 박탈해 현재의 삶도 박살내고 미래도 꿈꾸지 못하게 하는 악마와 같은 탄압 수단이다. 돈 없고 힘 없기 때문에 몸으로 권력과 부딪치는 것인데 그 몸에 벌금을 부과해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다.
활동가들이 이에 항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역을 살러 들어가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9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경석 공동대표가 200만원 벌금을 ‘몸빵’하기 위해 스스로 구치소에 들어갔다. 그는 구치소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벌금 때문에 가뜩이나 가난한 장애활동가들의 호주머니를 털지 말아달라 했다고 한다. 누구는 일당 5억원이지만 그가 받는 일당은 ‘엄정하게도’ 5만원이기 때문에 200만원을 때우려면 40일을 갇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활동가들이 긴 줄을 서고 있다.
그러나 노역을 살러 가는 이들은 단지 돈이 없어 권력의 명령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순순히 노역장에 들어감으로써 권력과 맞섰던 자신들의 몸은 벌금 따위로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을 웅변한다. 벌금으로 대체되기를 거부하는 것을 통해 돈과 권력을 넘어서는 몸, 나는 그들의 노역에서 그 불가능이 현실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은 것 같은 이 치욕의 시대에 기적과 같은 선물을 ‘거저’ 받은 우리가 이제 응답해야 한다. 우선, 강정에서는 법률 지원을 위한 모금을 하고 있다.
엄기호 |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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