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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하청노동자들이 노예가 아님을, 기계에 속한 부품이 아님을 당당하게 보여주자.” 2003년 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한 하청노동자가 공개적으로 ‘비정규직 인간선언’을 하며 노조 결성운동에 나서자고 호소했다. 월차를 쓰려면 해고를 각오해야 하고, 일하다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고, 몸이 아파도 조퇴를 못해 컨베이어벨트에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가는 시절이었다.


하청 내부에도 차별이 있었다. 1만명에 달하는 사내하청 중 20% 가까운 2·3차 하청은 대부분 여성이었고 법정 최저시급도 제대로 못 받고 있었다. 노조 결성에 나선 하청노동자들은 처음부터 1차 하청과 2·3차 하청을 가르지 않았다. “우리가 2·3차 하청을 홀대한다면, 정규직이 하청 차별에 눈감는 것과 도대체 뭐가 다르겠는가!”


2003년 7월8일, 127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 마침내 ‘현대차비정규직노조’를 결성했다. 노동조합 하나 결성했을 뿐인데, 경총이 직접 나서서 노조 설립필증을 내줘선 안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청노동자들은 현대차와 아무 상관없는 하청업체 정규직, 즉 현대차 비정규직이 아니라는 억지 논리였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정규직’이란 이름 넉 자에 딴죽을 거는 자본의 모습은 변한 게 없다.


이듬해 노동부는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 1만명 사내하청 노동자 전원이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내리게 된다. 평조합원들은 불법파견 입증을 위해 날마다 생산라인 흐름을 조사하고 쓰레기통까지 뒤지며 증거를 찾아냈다. 2010년 대법원이 불법파견의 핵심 증거로 판시한 것이 바로 매일같이 수만장씩 쏟아져나와 쓰레기통에 버려지던 ‘조립작업 지시서’였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쓰레기통에 그득그득 증거물이 쌓이는데, 자본은 이게 불법파견이고 직접 고용해야 한다면 법이 잘못된 것이라며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을 계기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다. 불법파견 판정은 1차 하청에 몰려 있었지만, 노조 결성 초기의 정신을 버리지 않고 2·3차 하청까지 모두 직접고용을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불법을 적발해놓고도 현대차 사법처리는 뒷전이었다. 한술 더 떠 검찰은 아예 불법파견이 아니라며 불기소 처분으로 현대차에 면죄부를 주었다. 대법원이 불법파견임을 판시한 지 3년이 지났건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본가들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고 있다.


아, 재벌에 너무나 자비로운 한국의 검찰과 노동부여! 그때나 지금이나 정몽구 회장이 권좌에 앉아 있지만, 현대차의 영업이익·당기순이익은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엄청난 이윤의 뒤에 부품사 노동자들과 비정규직에 대한 초과착취가 놓여 있음은 상식이 될 정도인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현대차는 돈 한 푼 안 들어가는 대국민사과 한 번 하지 않고 있다. 10년간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된 이들만 200여명이나 되고, 공정 축소와 인원 조정으로 잘려나간 비정규직은 헤아릴 수도 없는데!


10년 전 현대차는 사내하청을 상대로 신규 채용을 실시했다. 신규 채용이 있을 때마다 비정규직노조 탈퇴자들이 늘어갔다. 노조활동에 열심인 이들을 회사가 채용할 리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현대차는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신규 채용을 하겠다며 비정규직노조를 옥죄고 있다.


감옥에 가야 할 자들은 칼자루를 쥐고 있고, 정규직이 돼야 할 이들만 송전탑에 200일 넘게 갇혀 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10년간 배터지게 이윤을 챙긴 정몽구 회장이 진노했단다. 정규직이 양보하지 않으면 임단협 교섭은 어림없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현대차 '비정규직 희망버스' 제안하는 고공 농성자들 (경향DB)


7월20일, 다시 희망버스가 울산으로 향한다. 10년 전 1차와 2·3차 하청을 넘어 모든 노동자가 단결해야 한다던 정신을 되새기며, 비정규직과 굳건하게 단결할 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강산도 변하게 만드는 10년 세월, 현대차 재벌에도 시간의 법칙이 통하게 만들기 위해!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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