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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를 몰고 부산역을 출발해 낙동강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저녁 노을에 물든 강이 아름다웠다. 2003년 6월28일에 해고된 한 기관사는 이제 꿈 속에서 그 길을 간다. 눈 뜨면 가슴이 아리다.


그해 해고된 이가 47명. 기관차, 승무, 정비, 역, 차량, 시설 등 일하던 현장으로 아무도 돌아가지 못했다. 단 하루라도, 복직해서 기관차를 몰고 싶었던 어떤 이는 해고 상태에서 정년을 맞아야 했다.


2009년 대량 해고까지, 철도노동조합 해고자는 모두 94명이다. 2003년에는 ‘노·사·정 합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철도 구조를 개편’하려는 정부에 맞서다가, 2009년에는 ‘공기업 선진화 정책을 추진’하려는 정부가 적법한 파업을 불법이라 몰아 세워서, 2007년과 2008년에는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했다. 결국 철도 민영화(사유화) 추진에 맞선 탓이다.


(경향DB)


이 철도 해고노동자들이 ‘철길 따라 희망 걷기 동행’이라는 이름을 달고 5월28일부터 경부선 구간과 전라선, 영동선, 중앙선 구간으로 나뉘어 전국을 걷고 있다. 24일차인 지난주 목요일에는 수도권 1호선 천안역에서부터 성환역까지 걸었다. 


이날은 대전 구간을 끝내고 수도권 구간으로 들어서는 날로, 직산역에서 전라선, 영동선, 중앙선 구간을 마친 이들이 합류했다. 오는 27일이면 서울역에 도착한다.


하얀 개망초가 활짝 핀 철길을 따라 한 줄로 걷던 사람들이 여객열차와 화물열차,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두 팔 들어 반겼다. 어쩌다 ‘빠아앙’ 하고 기적이 울리면 40~50대 남자들이 세상에 없는 선물을 받은 양 좋아라 했다. 기적 소리가, 당신들을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행’에는 비번인 지역 철도노동자들이 함께 했다. 해고자들은 늘 그 자리에 있는 조합원들이 고맙다고 했다. 해고자들을 혼자 두지 않은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있어 기나긴 시간을 버텨왔다. 


“당신만 잘리지 않았어도, 그때 당신만 나서지 않았어도”라는 원망이 왜 없었을까. 그래도 묵묵히 참고 견딘 가족들도 이번 걷기에 나섰다.


등에 멘 배낭마다 꽂은 작은 깃발 두 개에는 ‘철도 민영화 반대’와 ‘해고자 원직 복직’이 새겨졌다. 이들이 걷는 이유다. 걸으며 만나는 사람들, 역마다 만나는 조합원들과 나누는 화제도 ‘철도 민영화’ 문제이다. 정부는 민영화라는 말을 감추고 방만한 경영 개선, 경쟁체제 도입, 효율성, 독일식 철도(내용은 영국식 철도)라는 말을 쓴다. ‘공공’ 영역에 ‘경쟁’을 말하는 걸 허투루 보아서는 안되겠다. 


한 해고자는 “자본가의 철학은 경쟁이고, 노동자의 철학은 단결이지 않으냐”고 했다. 그 단결은 약하고, 낮고, 배제된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게 아닐까.


전국을 걸으면서 해고자들은 뜯긴 산간벽지 철로와 폐쇄된 역, 사라진 역, 무인역을 보았다. 모든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이 아니라, 정부가 ‘돈이 되는 것’만 우선시 하며, 알게 모르게 구조조정을 해 온 결과다. 역이 닫히면 교통수단을 잃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이내 마을마저 사라진다. 돈이 많든 적든, 도시에 살든 산골에 살든 누구나 평등하게 누려야 할 공공 교통이, 값싸고 안전하고 편리하게 누릴 공공 철도가 자본과 이윤의 논리에 훼손되어서는 안되고, 공공성을 더욱 더 강화해야 한다고 해고자들은 말한다.


걸으면서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던 해고자들이 똑같이 한 기관사를 가슴 아파했다. 그는 2009년 해고되고 이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느 날 동료 해고자에게 맞선을 본다며 사진을 찍어 달랬는데, 그 사진이 영정이 되고 말았다. 사진을 찍어줬던 이는 장례식장에서 영정 속 그를 다시 사진 찍어야 했다. 


철도 민영화를 막고 공공성을 지켜 더 확고하게 하는 일은, 철도 노동자는 물론 더 많은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다.



박수정 | 르포작가 san-bada-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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