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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안타까운 마음처럼 소방업무의 대부분이 국가직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소방공무원들이 자신의 신분을 국가직 공무원으로 소개할 수 없는 아픔이 있다.

2014년 국민안전처 통계를 보면, 전체 소방공무원 3만9562명중에서 국가직 신분을 보유한 소방공무원은 353명, 지방직 신분의 소방공무원은 3만9209명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소방공무원들이 국가직 업무를 수행하면서 자신들의 소속은 지방에 두고 있는 셈이다.

119라는 똑같은 제복을 입고, 똑같은 모양의 소방차를 타고 출동하는 일에 국가직과 지방직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궁금해 하시는 분들은 2014년 제작·배포된 ‘전국의 모든 소방관들이 국가공무원이 되어야 하는 119가지 이유’라는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시기 바란다.

무려 119가지에 달하는 논리를 전개해서 소방공무원 신분의 국가직 전환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 받고자 했으나, 그마저도 국민안전처 출범 이후 유야무야 되어버렸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재앙 등 국가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리 국민들은 우왕좌왕 허둥대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지겹도록 목도(目睹)했으며, 앞으로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재난의 효과적인 예방과 대응을 위해서는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소방인들과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이처럼 소방의 국가직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은 비단 소방공무원들의 조직적 이기주의의 발로이거나 혹은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이 일일생활권으로 바뀌면서 재난에 있어서 관할구역이란 용어는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지금도 다양한 형태의 재난은 주기적으로 한반도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재난은 어느 한 지역이나 어느 한 나라의 개별사안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공동의 관심사인 것이다.

매번 칼럼을 이어갈 때마다 필자의 별 볼일 없는 경험과 무지의 소치로 주위의 고마운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협조적인 것은 아니다.

일전에 외교부, 인사혁신처 등에 전화를 해서 정중히 필자를 소개하고 자료협조를 요청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이라는 것은 고작 “지금 내가 바쁘니 다음에 전화를 달라”라며 은근히 전화를 끊어주기를 요구하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또는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겠다”며 추후 연락을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락을 기다린 지도 어느새 한 달이 되어간다.



이건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하루하루 자기 먹고 살기도 바쁜 사람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들에게는 소방의 국가직 전환이 그리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편안함이나 조직이기주의라는 구차한 논리에서 벗어나 재난에 국가가 나서는 것이 우리 모두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라는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각 지자체별로 서로 다른 재정 상태와 인력문제 때문에 국민들에 대한 소방서비스에도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지자체장이 바뀌면 그들의 소방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정도 차이에 따라서 소방의 역할과 위상은 큰 혼란을 겪기도 한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소방관들이 소방 본연의 임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지자체의 행사에 일꾼으로 동원되는가 하면 과도한 업무지원으로 고통 받고 있다. 예를 들면, 서울시에서는 소방관들이 학생들의 수학여행에 동원되고, 광주소방항공구조구급대의 경우 무등산 야생동물 먹이주기 행사, 광주시 자료제작을 위한 항공정찰에 소방헬기가 동원되기도 했다. 더욱 심한 경우는 소방헬기가 일부 지자체장의 공중 자가용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재난을 가장 잘 알고 있고, 다른 어느 조직보다도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 소방이다. 그리고 그 조직에는 희생과 봉사를 천직으로 믿고 묵묵히 일하는 우직한 소방관들이 있다.

미래에 들이닥칠 재난을 뻔히 알면서도 준비하지 않은 대한민국에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대한민국’이란 불편한 영화의 속편일 것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담아 다시 한 번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정식으로 부탁드린다.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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