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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에세이스트이자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프루스트라는 작가의 삶과 문학을 대상으로 한 권의 책을 썼는데, 제목이 <프루스트가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소설 말고(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 Not a Novel)>이다.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이 출간되어 있는데, ‘소설 말고’라는 부제가 생략되어 있고, ‘자기계발서’로 분류되어 있다. 매혹적인 제목 짓기 감각과 철학적 사유를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낸 덕분에 이 책은 프루스트가 누구인지 모르는 독자라도 읽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실제 큰 사랑을 받았다.

프루스트는 10대 때부터 오직 소설가가 되기 위해, 삶을 소설 쓰기를 준비하는 것으로 여기며 살았다. 그는 먹고, 자고, 보고, 만나고, 느끼고, 갈등하고, 사랑하고, 상처받고, 절망한 모든 것을 소설 쓰기의 질료로 사용했다. 결과물이 125만 단어로 축조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기나긴 소설이다. 일찍부터 그토록 꿈꾸고 헌신했으나, 소설가가 된 것은 38세 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편을 출간하면서이다. 이후 그는 14년 동안 같은 제목으로 7편(11권)까지 줄기차게 쓰다가 51세에 생을 마감했다.

프루스트가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소설 말고>는 삶을 사랑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사유를 ‘소설 말고’, 그것을 쓴 사람의 일상(사생활)을 중심으로 펼친 것이다. 보통이 프루스트를 대상화한 이유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전무후무한 소설을 쓴 작가이기 때문이다. 곧 프루스트라는 ‘인간’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소설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문학을 빌려 삶의 지혜를 제시한 보통의 방법론을 차용하여 ‘소설이 고등학생의 삶을 창의적으로 바꾸는 방법’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부산 전역에서 모인 고교생들과 워크숍 형태로, 방학 중 1주일에 2회 4시간, 오직 소설을 읽고 쓰는 시간을 가졌다.

글쎄, 프루스트가 당신을, 아니 소설이 고등학생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영상에 밀리고, 속도에 치여 갈수록 약해지고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문학을 본업으로 삼은 소설가로서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는 심정으로 도전 삼아 시작했던 이 프로그램은 3회 연속 고등학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강하게 커나가고 있다.

생각을 모아 전달하기 전에 속사포로 낱말들을 쏘아 날려 보내는 SNS 매체 환경의 열일곱살 전후 고등학생들이 진실한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자신의 안팎을 돌아보고, 나 아닌 사람들을 이런저런 입장으로 헤아려보며, 세상을 보다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게 된 것, 그러기 위해 시간과 마음, 지적인 능력을 집중하려고 애쓰게 된 것을 변화라고 해야 할까. 겨울 끝자락에 벌써부터 여름을 기다리는 그들의 눈망울이 봄빛처럼 새롭고 감사하다.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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