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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띠 여자들은 기가 세다는 오랜 속설 때문에 동거녀가 범띠라고 기를 눌러줘야 한다며 상습 폭행하다 입건된 사건이 2010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옛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드센 여자의 뺨을 때리고 남자가 자랑스럽게 대사를 읊습니다. 여자는 주먹 한 방이면 고분고분해진다고.

잊어버려야 할 옛 속담은 ‘북어와 계집은 사흘에 한 번씩 패야 한다’일 것입니다. 술은 사흘에 한 번씩만 먹고 다음날 북어 패서 해장해야 속이 편하며, 아내는 사흘에 한 번씩 때려줘야 피곤하게 굴지 않아 속이 편하다는 옛 남성들의 비열한 속담 말입니다.

지금에 와서 ‘북어와 계집은’ 속담을 실제로 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걸 뻔히 아니까 못 쓰지요. 하지만 이 말을 쓰지만 않을 뿐, 사회 전반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전해 보입니다. 대학 시절 점잖아 보이던 후배가 사귀던 여자 후배를 홧김에 때렸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다시 보이더군요. 남자에게 ‘홧김’이란 정말 사회가 묵인한 마법의 면책 단어 아닐까요? 속담에 ‘사내 못난 게 계집 치고 계집 못난 게 새끼 팬다’고, 대들지 못할 데서 받은 걸 다시 대들지 못할 곳에 졸렬하게 푸는 그 비겁함 말입니다.

군대 속어에 윗선에게 깨지고 그 화풀이가 계급 따라 아래로 줄줄이 이어지는 걸 ‘설사’라고 합니다. 멈출 수 없이 빠르게 저 밑까지 분풀이로 배설되기 때문이지요. 그 폭력의 계급성에서 나온 말일까요? 속담에도 ‘(군)영에서 뺨 맞고 집에 와 계집 친다’고 하니까요.

요즘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이 숱하게 온라인에 올라옵니다. 하지만 댓글 중에는 ‘맞을 만했네’라는 투의 글도 꽤 달립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는 ‘모든 남자가 그렇진 않아’ 하면서도 분명 ‘내 판단에’ 맞을 만하다 생각하면 대화보다 일방적 폭력으로 빠르게 자체 해결하려 들 겁니다. 말로는 어떻게 안 되니 때려서 내 말 듣게 한다며.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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