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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끝 무렵, 제가 대학 1학년 때 겪은 일입니다. 학보사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 응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내 문제에 대해 느낀 점을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입생인 제가 뭘 알겠습니까. 그저 쓰레기를 잘 처리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지요. 신문이 배포된 뒤에 찾아 읽어보니 ‘폭력, 탄압, 투쟁, 학자투’ 같은 단어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한 가지는 깨달았습니다. 이미 답을 내놓고 인터뷰할 수도 있다는 걸 말입니다.

모파상의 소설 <벨아미>는 벨아미(미남친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뒤루아의 출세기를 통해 타락한 당시의 파리 풍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가 신참일 때 고참기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아직 순진하군. 정말 내가 그 중국인, 인도인을 찾아가 영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 거라고 생각해? 그 사람들이 독자를 위해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는 내가 그 사람들보다 더 잘 알걸?”

‘과붓집 수고양이 같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없는 사실을 꾸며내거나 남이 오해하게끔 말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죠. 발정 난 수고양이가 과붓집 담장 안에서 아기 울음처럼 울어대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과부가 외간남자와 정을 통하고 몰래 애를 낳은 거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속담에 이런 말도 있습니다. ‘기사를 쓰랬더니 소설을 쓴다.’ 중립적 입장에서 올바른 사실만을 전달해야 할 언론이 특정 집단이나 자기 쪽에 유리한 기사를 쓰고, 반대되는 쪽엔 ‘털어서 먼지 안 나나 보자’면서 추측성 기사를 쓰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발뺌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3주기였습니다. 진실의 촛불과 어두운 침몰 사이에서 펜촉은 과거 어느 쪽 지면에 닿아 있었을까요? 구성, 계략이라는 뜻의 플롯(plot)은 소설 등에 쓰이지 기사에는 쓰이지 않을 것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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