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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필요한 물자를 확보하는 방법은 채집(수렵), 약탈(수탈), 생산, 교환의 네 가지가 있다. 채집과 수렵은 모든 동물 종의 보편적 생활 물자 확보 방식이며, 다른 동물이 확보한 것을 빼앗거나 훔치는 동물 종도 있다. 생산과 교환은 오직 인간만이 하는 ‘인간다운’ 활동이다. 비극은 인간이 생산 기술과 함께 그릇 만드는 법도 알아냄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릇으로 인해 인간에게는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물자를 미리 확보하여 장기 보관하는 습성이 생겼다. 자기 미래를 위해, 또는 자기 후손을 위해 그릇에 담아 두거나 창고에 보관하는 물자가 재산이었다. 재산을 보유함으로써 물자에 대한 인간의 욕망도 커졌다. 그런데 직접 생산하거나 평등하게 교환해서 물자를 얻는 방식만으로는 커진 욕망을 채울 수 없었다. 게다가 수십만 년에 걸쳐 형성된 인간의 사냥 본능은 생산을 시작한 뒤에도 소멸하지 않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다른 인간을 ‘사냥’하여 그가 가진 물자를 빼앗거나 그를 사로잡아 가축처럼 부리는 것은 위험 부담은 크나 많은 재산을 빠르게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인류가 언제부터 다른 인간집단을 약탈하거나 자기 공동체를 약탈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전문적 무장 조직을 만들었는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인류 최초의 직업 중 하나가 군인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군인이 하는 일이 전쟁이었고, 고대의 전쟁은 집단 약탈이었다. 국가는 전쟁을 통해 형성됐고, 전쟁을 통해 강해졌으며, 전쟁을 통해 자기 존재를 정당화했다. 국가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였다. 국가가 출현한 이래 수천 년간, 국가에 소속된 인간은 전쟁을 하거나 전쟁에 대비하면서 평생을 보냈다. 우리 역사에서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고려시대까지, 전쟁을 겪은 세대가 그렇지 않은 세대보다 많았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노동력을 가진 평민 남성은 모두 농민인 동시에 군인으로 살아야 했다.

생산과 교환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라는 증거였으나, 전쟁은 인간이 여전히 동물의 일종, 그것도 가장 잔혹한 동물이라는 증거였다. 인간의 가치관은 곡식을 키울 때와 전쟁을 할 때, 정반대의 방향을 취했다. ‘인간다움’이란 생산(生産), 즉 생명을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체득된 속성이었다. 지구 어느 곳에서나 최초의 법률은 ‘살인하지 말라’였다. 생명을 살리기 좋아하는 호생지덕(好生之德)은 하늘의 덕이자 ‘인간다움’의 본령이었다.

자연재해, 역병, 전쟁은 인간을 대량 살상한 3요소였다. 앞의 둘은 하늘의 소관이나 전쟁은 인간이 벌이는 짓이다. 전쟁은 인간을 말살하는 행위이자, 인간성이 말살되는 상황이다. 전쟁은 연쇄 살인마와 살인강도, 방화범을 영웅으로 만든다. 자기 공동체 외부의 적대적 인간집단에 대한 것이라면, 어떤 반인간적 범죄도 표창감으로 바뀐다. 역사상의 모든 전쟁이 온갖 대의명분과 미사여구로 수식되었으나, 그 본질은 타인을 죽이거나 포로로 삼아 재산을 불리는 것이었다. 인간은 생산 도구를 개발하는 일보다 전쟁 도구를 개발하는 일에 더 많은 지적 노력을 기울였다. 산업혁명으로 기계의 시대가 열리기 전에는 생산용 도구보다 무기 종류가 더 많았다.

산업혁명 이후 무기의 살상 능력은 신의 권능을 넘어섰다. 갑옷, 방패, 성벽이 무의미해졌고, 비행기로 인해 전선(戰線)이라는 개념도 모호해졌다. 전쟁의 목표는 상대의 요새를 함락시키는 것에서 생산 기반 전체를 철저히 파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런 전쟁에서는 이긴 쪽도 이익보다 손실이 컸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유럽 국가들은 전쟁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했다. “1200만 명 이상의 사망자, 인간의 곤경 위에 쌓아 올린 치욕적인 재산들, 처형장에 선 죄 없는 사람들, 훈장 받은 죄인들. 전쟁과 그 주역들에게 저주 있으라.”(프랑스 생마르탱데스트레오의 제1차 세계대전 기념비문) 당대의 첨단 과학기술이 총동원된 전쟁은, 경쟁이 문명 발전의 유일 동력이라는 믿음도 무너뜨렸다. 무제한 경쟁이 전쟁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전쟁 없는 상태를 지속하는 것으로 인류 공통의 목표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급속히 확산했다. 물론 이 반성의 힘이 관성의 힘을 확실히 누를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이로부터 30년도 지나지 않아, 인류는 핵무기를 개발했고, 사용했다. 인류 최후의 날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정하리라는 점도 분명해졌다. 전쟁을 인간과 인간성에 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평화를 향한 염원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지난 한 세기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시대였다.

러일전쟁 직전, 일본의 한 시사잡지는 총을 늘어놓아 ‘평화(平和)’라는 글자를 만든 삽화를 실었다. 총으로만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직설적 표현이었다. 평화의 반대는 전쟁이고, 전쟁은 힘으로만 막을 수 있다는 논리는 지금도 상식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그 뒤로도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잇달아 도발하여 수백만 명을 죽이고, 자기들도 수백만 명이 죽는 참화를 입었다. 총으로 만드는 평화의 시대는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시대일 뿐이다.

사실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다. 평(平)은 높낮이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글자로 반대되는 글자는 ‘차(差)’이다. 화(和)는 서로 다른 것들이 따로 놀지 않고 잘 어울려 있음을 뜻하는 글자로 반대되는 글자는 ‘별(別)’이다. 총성이 울리든 아니든, 대량 살상 무기가 사용되든 아니든, 지금도 온 세상이 매일매일 전쟁 중이다. 힘으로는 결코 항구적 평화를 이룰 수 없다. 평화로운 세계는, 차별 없는 세계와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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