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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덩치에 안 어울리게 사람보다 더위를 많이 탑니다. 소는 영상 25도만 넘어가도 스트레스를 받는다죠. 그래서 새벽같이 나가 서둘러 일하고는 한낮에는 소를 나무 그늘 밑에 매어 둡니다. 그럼에도 햇볕에 지친 소는 여름밤 달빛만 보고도 헐떡거렸다 합니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더위 먹은 소 달만 봐도 헐떡인다’입니다. 아마도 달을 보고 그런 게 아니라, 밤사이 최저 온도가 25도 이상, 즉 열대야라서 그랬을 거라 짐작됩니다. 옛날엔 온도계가 없어 몰랐겠죠.

오늘은 입추. 40도를 넘던 기록적인 폭염이 다소 꺾인 느낌이지만 여전히 한낮 온도는 35도를 육박합니다. 계속되는 열대야로 다들 기진맥진해서 전기요금 폭탄이고 뭐고 일단 살고나 보자 아껴둔 에어컨 틀어 숨통을 틉니다. 요금 인하 얘기가 있지만 정부도 사실 국민들이 바라는 게 가정용 전기의 누진제 폐지임을 알긴 알 겁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라 자랑하면서 언제까지 관공서 냉방온도 28도에 에어컨 놔두고, 선풍기 더운 바람으로 버티라는 건지요. 누진제 폐지한대도 전기 펑펑 쓰지 못할 참 궁색한 살림들인데요.

국가 발전을 위해 쓸 거 못 쓰며 변기 수조에 벽돌 넣던 시절이 아닙니다. 버티는 데도 도가 있습니다. ‘내년 여름엔 안 이렇겠지’ 당국자는 고갯마루에 소 넘어가듯 애국심이란 죄책감에 기대 슬쩍 넘어갈 생각, 혹시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젠 속아 넘어가지도 못합니다. 정말이지 더위 먹어 소가 넘어가게 생겼으니까요.

지금 청와대 청원부터 언론까지 가정용 전기 누진제를 그만 좀 폐지하자는 주장이 폭염보다 뜨겁습니다. 국민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종일 땀범벅도 모자라 또 밤새도록 끈적끈적 자야 하는 걸까요. 우리끼리 더위팔기, 더는 못하겠습니다. 이 여름, 헐떡이며 문 두드리고 당국자 보이자 대뜸 말합니다. “내 더위 사가라!”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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