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서로 바쁜 시간들로 살다 보니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할 일이 점점 적어집니다. 그래도 어쩌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을 때가 생깁니다. 하지만 식구들 표정은 데면데면합니다. 너무 오랜만이라 낯선 탓도 있지만, 또 ‘밥상머리 교육’이 있을까 싶어 얼른 먹고 일어날 궁리를 하기도 하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요즘 뭐 하느라 바빠서 가족끼리 밥 한 끼를 못하냐?” 옆에서 눈치를 주면 “지금 아니면 언제 본다고. 모처럼 모였을 때 얘기 좀 하자는데, 그게 뭐 잘못됐어?”-이럴 때 아니면 언제, 라면서 꼭 텔레비전 틀어놓습니다. 들리는 뉴스 소리에 또 “저 놈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돌아다보는 시선 피하며 거칠게 밥만 욱여넣습니다.

흔히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합니다. 밥 먹을 때 스트레스를 받으면 입맛 뚝 떨어지는 건 둘째 치고, 먹은 것 얹히고 신물까지 올라오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조상들께선 밥상에서의 언동 역시 조심하라 일렀습니다. 착하고 고분고분한 개도 밥 먹는데 건드리면 으릉! 합니다. 이때는 식욕이란 본능이 앞서 눈에 뵈는 게 없으니까요. “감히 이놈이 주인한테!” 홧김에 손을 올렸다간 바로 왁! 하고 물릴 수 있습니다. 편하게 먹어라, 먹을 땐 웬만하면 안 건드리는 게 상책입니다.

식욕을 채우는데 심기 건드리면 더 큰 스트레스와 짜증을 유발합니다. 친구 아닌 다음에야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한마디 못하고 맛도 모른 채 꾸역꾸역 삼키겠죠.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어색한 침묵이 식탁 위에 흐를 때가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윗사람 먼저 말 꺼내진 맙시다. 나 빼고 다 떠들라 하고 “으흠~ 맛있네 맛있어!” 분위기만 살려주십시오. 어쩌다 숟가락 내밀면 반찬 같은 말씀만 가만 얹어주시고요. 억지로 떠먹이는 밥은 피와 살로 못 가고 식탁만 해체합니다. 겪어봤잖습니까.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