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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기고]혁명-이후

opinionX 2019. 4. 23. 14:15

“왜 영화에서는 ‘혁명-이후’를 다루지 않을까?” 나는 종종 생각한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처럼 노골적인 혁명 서사를 보고 난 후에는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힌다.

<설국열차>는 기상 이변으로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은 건 무한동력엔진을 장착한 윌포드 트레인에 올라탄 사람과 생명체들뿐이다. 영화에서 멈추지 않는 기차는 폭주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은유로 해석되었다. 기차에서의 삶이 철저하게 구획된 계급사회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영화 <설국열차> 촬영현장에 선 봉준호 감독. 모호필름 제공

영화는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혁명을 따라간다. 하나는 ‘엔진 칸’을 탈취하려는 ‘꼬리 칸’ 빈곤계급의 봉기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기차 옆구리를 터트려 기차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반체제 혁명이다. 꼬리 칸 사람들은 기차 외부로 나가면 얼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옆구리를 터뜨리고자 하는 이들은 바깥세상, 즉 자본주의의 외부야말로 진정한 해방의 공간이라 믿는다.

영화의 끝에 기차는 전복되고, 어린 소녀와 소년만이 살아남아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북극곰을 발견한다. 이제 설국의 시대는 끝났다. 이브와 아담은 자본주의-이후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희망을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말에 대한 해석은 분분했다. 대중은 그들이 북극곰에게 잡아먹혔을 것이라는 농담을 퍼뜨렸고, 한 평론가는 북극곰은 소녀의 환각에 불과하다고 썼다. 그들은 결국 기차 밖에서 얼어 죽었을 거란 말이다. 이런 낄낄거림은 혁명의 불가능성을 맹신하는 시대의 좌절과 냉소를 잘 보여준다.

나는 좀 다른 이유에서 <설국열차>의 해피엔딩에 동의할 수 없었다. 영화는 혁명이 성공하고 체제가 내파된다면 우리가 ‘순백의 공간’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영화 '설국열차'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무엇보다 생존자가 소녀와 소년, 둘뿐이라는 결론은 안일하다. 도끼와 총을 가진 자는 물론이거니와, 기술이나 정보를 가진 자, 야비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등, 다양한 존재가 살아남았을 것이라는 예상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그러므로 기차의 내파 이후에 시작되는 것은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생존자들 사이의 분배 투쟁일 터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설국열차에서처럼 생각하고 욕망하고 행동한다면, 이 싸움이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되지 않겠는가? 

대중영화가 혁명까지의 과정을 묘사하기는 쉽지만, 그다음을 설득해내기 어려운 건 아마도 이 탓일 것이다. 이런 상상력 안에서 혁명은 그저 스펙터클로 소비되어 휘발될 뿐이다.

사실 영화를 에둘러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에겐 이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촛불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은 국가 최고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를 ‘혁명’이라고 부른다. 안타깝게도 촛불혁명 후, 세상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 ‘먹고사니즘’과 ‘내로남불’ 운운이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선거제 개편 등 중요한 개혁 의제를 삼켜버린 것은 일상을 지탱하는 습(習)이 그토록 무서운 까닭이다. 그러므로 습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지속되는 과정으로서의 혁명이자 혁명-이후다.

헌법재판소가 7년 만에 낙태죄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린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를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 환호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다행히도 혁명-이후를 보여주는 빛나는 순간들도 있었다. 66년 만의 낙태죄 폐지도 그중 하나다.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선고는 페미니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민주시민이 함께 이룩해온 사회의 질적 변화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습의 전환’이다. 여성을 자궁으로 치환하여 국민 재생산의 메커니즘 아래 복속시키고, 생명을 우생학적 관점에서 등급을 매겨 관리했던 오래된 관습은 이제 역사의 뒤안으로 떠밀려 내려가고 있다. 

주수에 집중해서 “허락할 낙태와 불허할 낙태”를 법으로 정하려는 움직임은 낙태죄 위헌 선고를 ‘혁명’이라는 스펙터클로 박제하여 그 생명력을 박탈하는 효과를 초래할 뿐이다. 혁명-이후를 그리지 못하는 영화처럼 되지 않기 위해 이제 한국 사회가 해야 할 것은, 낙태죄 폐지 운동의 성과와 의의를 일상의 습으로 만들어가는 일이다.

<손희정 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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