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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만장(氣高萬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세 높기가 만 길이라 하늘도 뚫겠다는 말입니다. 흔히 일이 뜻대로 잘될 때 우쭐대며 뽐내는 것을 뜻하는데, 펄펄 뛰며 머리끝까지 성내는 것도 뜻합니다. 얼마 전 우리는 모 항공사 임원의 물벼락 욕설 갑질 사건을 통해 기고만장의 두 가지 뜻 모두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이가 그렇지 못한 이에게 강압적으로 부당한 요구나 행동을 일삼는 것이 신조어 ‘갑(甲)질’입니다. 그리고 갑 중의 갑 ‘슈퍼 갑’이라면 세상 겁날 것 없고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를 겁니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조상을 박대하면 삼 년에 망하고 일꾼을 박대하면 당일에 망한다.’ 조상 아래 하나로 화합하지 못하고 반목하는 집안은 서서히 콩가루가 됩니다. 그러나 당일 일할 일꾼들에게 주인입네 함부로 굴면 일꾼들이 일 못해준다 드러누워 바로 큰 차질을 빚습니다. 일꾼들은 일감 잃어 손해고 주인은 품삯의 몇 십, 몇 백 곱의 손실을 보아 서로 손해입니다.

사회의 조직과 옷감의 조직(組織)은 같은 한자입니다. 날실에 엮은 씨실이 치밀하지 못하면 쉽게 해지고 터집니다. 비행기 역시 20만 개의 부품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긴밀하게 짜여 있으며 유기적으로 모두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동체와 날개, 엔진이 ‘누가 갑이고 몸통인지 알려주겠다’면서 여타의 부속들을 업신여긴다면 얼마 날지도 못하고 몸통도 부속도 갑도 을도 다 같이 추락하고 맙니다.

빗물로부터 기와 밑 알매흙 보호하고 바람으로부터 위쪽 기와들 든든히 잡아주는 것이 용마루입니다. 이런 용마루가 용 됐다고 들떠 건들거리면 기왓장들은 차례로 아래로 우르르 쏟아져 산산이 조각납니다. 고래 등 같은 집이건 거대 조직이건 전체를 와해(瓦解)시키는 건 늘 자릿값 대신 자리갑(甲) 하는 그 꼭대기입니다. 수키와의 눈웃음과 암키와의 빙그레, 그 하늘색 스마일을 다시 그려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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