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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이 지나갔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친척들과 이런저런 얘기들 많이 나누었겠지요. 그런데 요즘 명절에 모였다가 마음이 상해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생각 없는 자랑, 지나친 간섭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결혼하고 몇 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는 부부에게 “애는 못 낳는 거니, 안 낳는 거니?”, 진학이나 취업에 실패한 조카에게 “아유, 우리 애는 이번에 어디 들어갔는데. 넌 어쩌니~”. 그냥 눈길과 손길에 마음을 담아 “요새 힘들지?” 정도면 되지 않았을까요?

유태인 속담에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른이란 쓸데없는 참견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존재여야 한다는 뜻이죠. 또 젊은 층 어휘에 ‘고나리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관리(管理)의 흔한 오타 ‘고나리’가 ‘높으신 나리’로도 보여 유행하는 것인데, 해준 게 뭐 있다고 윗사람이라고 참견하고 가르치려 드느냐는 말입니다. ‘조카 생각하는 만큼 아재비 생각한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돈 몇 푼 쥐여주었다고 제 마음대로 ‘고나리질’하면 정말 ‘먼 친척’으로 마음의 담만 더 멀리 쌓게 되지 않을까요?

이번 설 명절에 한 번 더 다짐하고 갔습니다. ‘괜한 얘기는 하지 말자. 도움 되는 어른이 되자.’ 예쁜 현금봉투에 새 돈을 담고, 그네들에게 유용한 상품권 몇 장도 잊지 않았습니다. 거실에서 밤늦도록 웃음꽃이 피니 머리 굵은 조카들도 슬금슬금 나와봅니다. 따라 웃으며 자연스레 자기 얘기도 합니다. 그 나이 때 저도 했던 걱정과 불안이지만 아무 말 않았습니다. 조언이랍시고 하자마자 윗사람의 무게만 실릴 테니까요. 아마도 이번 명절에 연 제 지갑에 ‘그저 말없이 들어준 귀’도 한몫했을 듯합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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