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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앞두고 며칠 강추위가 있었다. 겨울이니 마땅하다 싶으면서도 한파가 반가울 수는 없는 일이다.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 해뜨기 전 집을 나설 일도 없고, 새벽 샤워 후 채 덜 마른 머리를 길거리에서 꽁꽁 얼어붙게 할 일도 없고, 그 목덜미가 더 시릴 일도 없고, 그렇게 도착한 직장에서 마주쳐야 할,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상사나 고용주도 없다. 그렇더라도 내 가족 중의 누군가, 내 지인들 중의 대부분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내 목덜미도 덩달아 추웠다.

굳이 내 가족, 내 지인을 들먹이지 않아도 내가 사는 세상이 추우면 나 역시 추워지는 게, 사람 사는 일이고 마음이다. 누군가에게는 몹시 성가시고 괴로운 명절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명절은 명절이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구에게든 전할 덕담이 준비되는 것도 그래서일 터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부자 되세요,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그냥 마음으로 전해지는 덕담들이다.

그리고 새해의 결심들. 자신에게 던지는 덕담과 같은 결심들. 부자 되고 건강해지는 결심들을 다시 한번 다져본다. 헬스클럽 정기권을 끊을지, 요가를 시작해볼지 고민하고, 지난해에는 가지 못했던 여행을 계획해보기도 하고, 난데없이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 수강증을 끊어볼까도 생각해본다. 정확히 1년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생각들이고, 지난 1년 동안 이루지 못했거나 실패한 계획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마 정확히 1년 후에, 다시 똑같이 하게 될 생각이거나 계획들일 터이다.

설은 새해에 이어 또 한번 시작되는 새해라, 잠시 느슨해졌던 마음이 다시 새로워진다. 지난 한 달 잠깐 놓쳤던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아보고, 못 지킬 줄 알고 못 이룰 줄 알면서도, 그러면 또 어떤가, 또다시 결연하다가 또 너그러워지는 날이기도 하다.

설을 며칠 앞둔 추운 밤, 신도시에 있는 내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탔었다. 버스는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와 자유로를 달리는 좌석버스인데, 타고 보니 입석이었다. 서서 가기에는 긴 거리지만 한번 놓치면 한없이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할 상황이라 입석인 줄 알고도 다시 내릴 수 없었다. 춥고 어두운 밤,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흔들흔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었다. 피로하고 쓸쓸하고 고단한 귀가, 나는 어쩌다가 한번이겠으나 누군가에게는 거의 맨날 반복될 그런 귀가였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앉아 있던 승객 중의 하나가, 입석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기사에게 물었다. 그렇네, 나도 그때서야 생각했다. 당연한 문제제기고 당연한 항의였다. 그러나 그 말은 도리어 입석 승객들의 공분을 샀다. ‘누군 그걸 몰라’라는 말부터 시작돼서, ‘그럼 지가 내리든가’로 이어져, ‘그래서 어쩌라고’ 시비조의 말까지 나왔다.

항의를 했던 사람도 입석 승객들을 향해서는 아니었을 터이고, 그 항의에 대해 불만을 터뜨린 사람들도 그 승객을 향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 터이다.

운이 좋아 자리를 차지했거나, 아슬아슬 자리를 놓쳤거나 그 버스 안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개 한편일 것이 틀림없다. 춥고 고단하고 쓸쓸한 퇴근길에서 늘 만나게 되는, 그저 운에 따라 앉거나 서거나 하며 같은 방향에 있는 집으로 함께 향하는. 좌석벨트를 단단히 매고 안전히 집으로 귀가하는 것은 당연한 소망이지만, 그 소망에 앞서 어떻게든 집으로 빨리 돌아가 얼른 쉴 수 있기만을 바라는. 서서 가는 게 안전하지 않은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말하자면, 달리 방법이 없는, 그런 쓸쓸한 한편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와 자유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 서서, 나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억들을 떠올렸다.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리는 좌석버스의 입석 승차를 금지한다고 했고, 그래서 버스 안의 좌석 수를 늘린다고 했고, 정말로 좌석 한 칸을 더 늘리기 위해 중간문이 폐쇄되기도 했고, 2층버스를 도입할까 한다고 했고, 별별 말들이 다 많았었는데. 교통대란이라고 했고, 기자들은 한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카메라로 찍어가며 현장보도를 했고, 누군가는 대책이 없다고 말을 했고, 대책이 없으나 안전이 최고라는 말도 했고, 곧 이러다가 말 일이라고도 했다. 근본적인 대책이 없는 한 곧 그러고 말 일이라는 건 출퇴근 시간에 그런 노선의 버스를 한번이라도 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일이었다.

근본적인 대책이란 기본적으로 봤을 때는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다. 진지하고, 기민하고, 솔직하게 운영되는 시스템.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고, 부족한 것을 부족하다고 말하고, 고치겠다고 말하면 정말 고칠 것 같은 시스템. 그 시스템이 돌아가는 방식과 그것을 돌아가게 하는 사람들과 그것이 적용되는 방식에 대한 믿음. 말하자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믿음이다.

설을 며칠 앞두고 서울 한복판에서 전동차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사람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그 사고가 처리된 방식이 또 놀라웠다. 차내 방송은 승객들에게 차 안에서 대기하라 했는데, 차에서는 불꽃과 연기가 솟고, 승객들은 스스로 문을 열고 대피했단다. 그 과정이 문제가 되자 서울메트로 측에서는 객차 내 대기 조치가 비상 매뉴얼상 적합한 것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에서 기다리는 게 더 안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승객들은 아니라고 했다.

메트로 측의 주장이 맞는지, 아니면 차 안에 있으라는데도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승객들이 옳았는지, 나로서는 말할 수가 없는 일이다. 전문가도 아니고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그런 상황에서 무얼 믿어야 했을까. 누굴 믿을 수 있었을까. 당국과 담당자는 믿을 수 없고, 매뉴얼은 정확하지 않을 것 같고, 무엇보다도 이 사회와 시스템에 대해 너무 많이 실망을 한 뒤이니.

그래도 설날이다. 덕담은 아낌없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분들, 복받으시길. 건강하시길. 안전하시길. 로또 당첨 같은 큰 복 없어도, 소소하게, 다정하게, 따듯하게, 너무 화나지 않게, 너무 기막히지 않게, 체증이 확 뚫리게, 자주 아주 많이 웃을 수 있게, 그런 한 해 되시길, 기원한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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