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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3월, 뽀로통한 표정을 한 중2 영애(가명)를 만났다. 영애는 초등학교 때 영어를 엄청 싫어했다. 영어시간을 매우 싫어했던 영애의 영어읽기는 초등학교 6학년 수준 이하였다. 그에게 수업은 지루하고 두려운 시간이었다. 한 반에 ‘영애’들이 여럿이었다. 그들은 국어, 사회 시간 글 읽기에도 힘겨워했다.

엄훈의 <학교 속 문맹자들>을 선생님들과 읽었다. 저자는 학교 속에서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비문해자 문제를 밝히고 공교육의 책무성을 지적했다. 학습부진을 읽기부진(비문해)으로 통찰했다. 선생님들은 수업 속 영애를 떠올렸고, 학습부진 이유로 가정적 요인, 누적된 학습 결손, 어휘력과 독해능력 부족 등을 꼽았다. 책을 참고 삼아 몇몇 교사들이 학생과 1대1로 대화하고 함께 책읽기를 시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제학생평가 프로그램인 OECD/PISA(2003)는 문해를 ‘개인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지식과 잠재력을 발휘하며, 사회에서 활동하기 위해 글을 이해하고, 사용하고, 고찰하는 능력’으로, 우리 평생교육법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문자 해득 능력을 포함한 사회적·문화적으로 요청되는 기초생활 능력’으로 규정한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조사(2014)에 따르면 만 18세 이상 성인 비문해율은 28.6%에 달한다.

비문해자는 초·중등교육 시절부터 학습에 필요한 기초능력 면에서 출발선 뒤에 있다. 앞서 언급한 요인 외에 일률적 교육과정·교육방법과 학생의 낙인감, 낮은 학습 효능감 등도 작용한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의, 고교는 중학교의 성과를 바탕으로 일상생활과 학습에 필요한 기본 능력을 기르는데 또래와 같은 시기를 놓치면 이를 회복할 기회가 적고 학교 측에서 기다려 주지도 않기 때문에 좀처럼 따라잡기 어렵다.

문해력 함양에는 가정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배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공교육은 가정적 배경에 따른 격차를 최소화하는 역할이 있다. 제때 읽고 쓸 줄 모르는 학생이 계속 소외되지 않도록 성장을 지원하는 공공성의 관점에서 문해력 함양을 보장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잘하거나 잘 못하거나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문해력 함양을 보장하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지원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영어를 잘 못하는 영애이지만 수업은 흥미 있게 더불어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랐다. 가정에서 보호자부터 책 읽는 습관을 지도해야 함은 물론이다. 교육과정은 학생의 현재에서 출발해야 한다.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의 그루웰 선생님은 흑인 학생들의 현실과 관계 있는 문학을 다룬다. 그에 못 미치지만, 나는 우리 학생들과 닿아있는 텍스트를 고른다. 부모가 육체노동을 하는 가정이 많아 주인공이 서서 일하는 엄마가 쉴 수 있는 의자를 사는 이야기가 담긴 영어책을 읽고 가족 이야기를 쓰는 프로젝트를 했다.

수업시간에 비문해자를 매해 많이 만난다. 협력수업에서도 소외되는 학생을 보며 미안함과 무력감을 느낀다. 학습 부진에 대한 전문연구 및 현장지원체계를 요구해야 한다. 제도적 요구와 함께, 교육자로서 동료 교사와 함께 힘겨운 아이의 마음을 같이 읽으며 고민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모든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자존(自尊)할 수 있길 희망한다. 문해력이 크게 향상되진 못했지만 그해 여름방학 영애가 말했다. “영어를 더 잘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내면에 변화가 생겼어요.”

손민아 | 경기 의정부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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