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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시간 싸움으로 마음 졸이며 초조해할 때 ‘조바심을 한다’고 합니다. ‘조바심을 친다’고도 하죠. 흔히 알려져 있는 조바심의 어원은 ‘조는 힘들여 비벼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초조하고 급해지기 일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뭔가 많이 궁색한 설명 같습니다. 생각대로 얼른 되지 않아 초조하게 만들 일은 세상천지에 넘쳐나는데 말이죠. 딱딱하게 말라붙은 밥풀은 불릴 시간도 없는 급한 설거지를 짜증나게 하고 찢어져라 힘줘도 안 나오는 똥은 식은땀으로 궁둥이에 깔판 자국 만드는데, 굳이 ‘조’를 넣어 만든 이 말만 오래도록 쓰이는 이유란 뭘까요?

‘조바심’에서 ‘바심’은 타작 또는 탈곡의 순우리말입니다. 타작은 마당에서 마당질(타작)하는 것입니다. 돌이나 통나무에 내려쳐 떨구거나 바닥에 깔아놓고 도리깨질로 내려쳤지요. 그러니 때릴 타, 타작(打作) 맞습니다. 또는 홀태, 훌태, 그네라 불리는 큰 빗을 비스듬히 거꾸로 세워 거기에 이삭 걸어 당겨 이 잡듯이 훑어 냈습니다. 근대에는 발판 연신 밟아 와릉와릉 돌리는 ‘와릉’이라는 통돌이에 대고 떨었지요(요즘엔 촘촘한 망에 조 이삭 깔고 차 타이어로 지르밟은 뒤 체 치듯 알곡을 거르더군요).

조를 바심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조 이삭을 두 손바닥 사이에 넣고 이리저리 비비는 것입니다. 어라? 초조할 때 우리가 하는 행동과 같군요. 그래서 저는 ‘조바심하다’를 조를 바심하는 동작과 우리가 초조할 때 생각 없이 하는 똑같은 행동을 가지고 만든 말이라고 주장합니다. 같은 속담으로 ‘조 비비듯 하다’도 있으니까요(물론 국어사전에는 아직 ‘조 낟알이 생각대로 비벼 떨어지지 않아 조급해지는 마음’ 정도로 조바심을 설명합니다). 어쨌거나 맨손바닥 비비며 무심결의 몸짓으로 어쩌지 못할 초조한 마음을 몇 톨이나마 떨궈보자는 그 몸짓이 조바심인 건 맞습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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