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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양반가나 부잣집에서 주인 대신 하인들을 관리하던 하인으로, 요즘으로 치면 집사 정도에 해당하는 ‘청지기’라는 직책이 있었습니다. 윗사람 곁에서 뜻을 받드는 수청(守廳)과 지키고 관리하는 직책 직(直)이 합쳐진 청직(廳直)에, 사람을 뜻하는 ‘-이’가 붙어 등대지기처럼 청지기가 됩니다. 청지기에게는 뒤섞여 자는 다른 하인들과 달리 수청방이라는 독립 공간 등 여러 혜택들이 제공됩니다.
그리고 이 수청방은 주인어른의 명을 바로 받으며 찾아온 손님들을 먼저 맞을 수 있도록 사랑방 바로 옆에 붙어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윗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주인 대신 일을 처리하다 보니 청지기 중에는 자신이 하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집 안팎으로 뒷짐 지고 다니던 이도 있었지요. 예나 지금이나 완장 하나 차면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어떻게든 ‘완장질’ 하고 싶어 들썩대는 하급 인간들이 있는 법입니다.
조금 나은 대접을 해주니 우쭐해함을 이르는 말로 ‘청지기가 벼슬인 줄 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관리자 시켜주니 마치 벼슬이라도 한 양, 양반이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입니다. 어느 정치인은 5개월치 식비로 혈세 1억5000만원을 자기 돈처럼 썼습니다. 어느 시의원들은 자기네 지위를 돋보이게 할 의전용 차량과 의자를 바꾸는 데 지역주민을 위한 예산을 낭비했지요. 국회의원이라고 좀 나은 대우를 해주니 더 대접받겠다고 의원 월급 올리고 혜택 넓히는 데만 짬짜미로 참 열심들이십니다.
공직은 국민을 대신하라 내준 직책일 뿐인데 ‘보직’ 삼아 벼슬아치 노릇을 합니다. 청지기가 곳간 열쇠로 어떻게 행세하고 다녔는지 검색해봅시다. 과거가 그 사람이 할 미래입니다. 수청방은 일 잘하고 신실한 청지기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입니다. 높으신 청지기님이라면 방 빼고 가시는 길 편히 모셔드려야죠.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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