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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시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해온 ‘자유민주주의의 압살사’.” 나는 해방 60주년에 <해방 60년의 한국정치>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서문에서 한국현대사를 이처럼 요약한 바 있다.

그렇다. 자유민주주의란 이 땅의 냉전적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듯이 단순히 반공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사상,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와 같은, 유엔인권조약의 ‘자유권’이 보장되는 정치체제이다. 80년대 ‘제3의 물결’이라는 범지구적인 민주화의 흐름을 정리한 세계정치학계의 권위 있는 집단연구는 특정한 이념이나 정당을 금지시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명확히 규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산주의’와 같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그 핵심인 사상의 자유 등 자유권을 압살해 왔다. 그 결과 한국현대사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해온 ‘자유민주주의의 압살사’라는 ‘자유민주주의의 비극’, 아니 ‘희극’의 역사가 되어 왔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해산심판에 대한 정부의 최종 변론을 접하면서 떠오른 것이 위에 인용한 내 책의 서문이었다. 정부는 최종 변론에서 “통합진보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려는 암적 존재”이기 때문에 해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혐의에 무죄가 선고됐음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는 것이야말로 사상의 자유 등 자유권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자유민주주의의 파괴행위’라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마지막 공개변론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공개변론에는 황교안 법무장관(아래 왼쪽 사진)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아래 오른쪽 사진)가 각각 정당해산심판 청구인과 피청구인으로 참석해 최후변론을 했다. (출처 : 경향DB)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기를 거부하는가 하면 북한의 핵무장을 자위권의 발로라고 옹호하는 등 친북적인 언행으로 ‘종북주의’라는 비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이 같은 민주노동당의 노선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이 민주노동당을 계승했다는 이유로 해산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새누리당이 12·12와 5·18학살을 주도해 군사반란과 내란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두환 등 5공 반란세력의 민정당을 계승했기 때문에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아니 순수가정으로 통합진보당의 노선이 설사 종북주의라고 하더라도 종북주의의 자유도 보장돼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틀린 주장도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에피소드가 ‘조갑제 사건’이다. 대표적인 극우논객인 조갑제씨는 노무현 정부를 ‘친북비호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군인을 포함한 국민들에게 사실상의 무장봉기를 선동했다. 그러자 친노단체들이 그를 내란선동죄 등으로 고발했다. 이에 대해 나는 “조갑제를 위한 변명”이란 글을 통해 그의 주장이 틀린 것이지만 진보의 사상만이 아니라 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처럼 우파건 좌파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이를 억압하고 사법적으로 처벌하려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거리가 멀다. 종북주의이건, 극우주의이건, 그것은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 ‘사상의 시장’에서 국민들의 선택에 의해 걸러져야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 사회는 종북주의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따지기에 앞서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려는 정부의 움직임은 정치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다 하더라도 이들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면 해산조치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데 왜 무리수를 두는가? 또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가 지지자들이 어두웠던 시절의 지하당으로 들어가 버리면 어쩌려는 것인가? 답답한 노릇이다.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그 핵심인 자유권을 압살하는 것이 과연 이를 지키는 것인지 반문해봐야 한다. 통합진보당도 이번 기회에 종북주의라는 비판을 듣는 노선들을 정비하고 발본적인 혁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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