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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과 김대중. 한국 민주화의 두 큰 나무다. 하지만 사당정치와 지역주의를 두 축으로 한 ‘3김 정치’라는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 사당정치와 관련된 것이 친·인척과 비선을 중심으로 한 측근정치이다. 측근정치는 삼엄한 군사독재의 감시와 공작정치에 대항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불가피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부작용이 커서 양김이 대통령이 된 후 자식들과 측근들이 줄줄이 감옥을 가야 했다. 양김과 함께 사라졌던 측근정치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측근 문제가 제기된 것은 ‘십상시’ 문제이다. 이 문제가 일단락되면서 사라지는가 싶었던 측근 문제가 하루가 멀다고 다시 터져 나오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 중심에는 최순실씨와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이 자리 잡고 있다. 청와대와 친박계는 이를 근거 없는 억측과 정치공세라고 일축하고 있는 반면 야권은 여권의 관련자 증인 채택 저지로 특검이 필요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공식 방한한 루이스 기예르모 솔리스 코스타리카 대통령 내외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친박계를 중심으로 여당은 이들의 증인 채택을 결사적으로 막고 있고 국정감사는 ‘식물 국정감사’가 되고 있다. 청와대와 여권의 주장대로 이 모든 것이 억측에 불과하다면, 이를 일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막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비관할 필요는 없다. 시간은 언제나 진실의 편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1년 반만 기다리면 된다. 1년 반 뒤면 이 모든 의혹들이 억울한 모함과 억측에 불과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사실이었는지 밝혀질 것이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 해체 움직임이 보여주듯이 이에 대한 은폐작업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흔적은 남고 꼬리는 밟히게 마련이다. 또 노태우 정권의 5공 청문회와 김영삼 정부의 전두환·노태우 사법처리가 보여주듯이, 설사 여당이 정권재창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아니 피해가지 않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청와대와 여당이 의혹 규명의 기회를 봉쇄함으로써 박 대통령에게 따라다니는 ‘불통’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생각나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을 치고 있고 그 반작용으로 보수진영의 대선 예비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인기가 치솟던 2007년 봄 필자가 썼던 글이다.

본인들과 그 지지자들은 싫어하겠지만, 노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수많은 정치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있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여론과 상관없이 본인이 옳은 일을 위해 순교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비판에 귀를 막는 순교자주의다. “노 대통령은 평생을 주류에 도전하고 살아온 반주류의 순교자주의자다. 특히 지역주의에 저항해 돈키호테처럼 싸워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순교자주의가 잘못돼 올바른 여론에 대해서도 ‘여론은 무시하기로 했고 역사는 내가 옳았음을 평가할 것’이라고 위험하게 나가고 있다. 박근혜 의원 역시 순교자주의자이다. 다만 차이는 주류 중에서도 최상류 주류로 살아온 ‘기득권 수호적’, 반공주의 순교자주의자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친북좌파에 의해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자신은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순교하겠다고 믿고 있다.”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의 순교자주의는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변할 것 같지 않다. 불통 뒤에는 국민이 아니라 역사와 대화하고 국민과 여론이 아니라 역사에 의해 평가받겠다는 순교자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생겨난 학문이 대통령학이다. 과거에 대통령을 평가할 때 주목한 것은 올바른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지적 능력과 리더십이었다. 그러나 핵전쟁시대를 맞아 미국 대통령이란 자리가 지구를 파멸로 이끌 핵보복 여부를 불안정한 정보에 기초해 짧은 시간 내에 결정해야 되면서, 주목하지 않았던 대통령의 성격, 정서적 안정성, 성장과정 등을 연구하게 된 것이다.

이 연구의 선구자는 대통령을 활동성을 기준으로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 성격을 기준으로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제시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케네디처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대통령이다. 문제는 최악의 대통령인데 그것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대통령이 아니라 닉슨처럼 부정적이면서 적극적인 대통령이다. 부정적이되 소극적인 대통령은 최소한 사고는 치지 않는다. 사실 어느 분야건 가장 위험한 지도자는 부지런하고 용감하고 헌신적이면서 ‘무식한’ 지도자, 즉 ‘잘못된 확신’에 차 있는 지도자이다. 쟁점이 되고 있는 측근 문제는 1년 반 뒤에는 규명될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차기 대통령이다. 대통령학의 시각에서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차기 대통령 지망생들의 여러 면면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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