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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엔 오랜만에 야전용(?) 음향트럭 위에 올라 시낭송을 했다. 현대·기아차 본사 정문 앞. 역시 대한민국 최고 재벌을 대하는 국가의 예 의는 각별했다. 주변이 온통 경찰병력으로 새까맸다. 해산명령 3차가 지나 검거가 임박했으니 주변 기자분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하시라는 자상한 경찰 방송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회를 시작하기도 전 정문 앞에 임시로 꾸린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 분향소에 조문하려는 노동자, 시민 17명이 연행된 바로 직후였다.

또 그럴까 싶어 나도 특별한 내용의 시를 준비했다. 언제부터인가 기자회견, 문화제, 추모제를 가리지 않고 어김없이 듣게 되는 그 ‘해산명령’을 한번쯤은 희화화하고 싶었다. 제목은 ‘노동자 민중의 해산명령 1호’였다. 온갖 공유지를 사유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기회와 행복을 사금고 속에 부당 억류하고 있는 재벌들에게 인류 모두의 염원을 받아 해산을 명령하는 내용이었다.

자본의 사병들이 되어 주권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공권력에 즉각 해산을 명령하는 내용이었다. 국가마저도 잘못이 있으면 해산을 명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확인. 시가 좋아 받은 박수가 아닐 것이다. 방금까지도 경찰 해산명령에 부글부글 끓던 사람들 얼굴이 잠깐 밝아지며 ‘해산하라’를 구호처럼 따라 외쳐주기도 했다.

그런데 왜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 추모 범국민대회를 하느냐고? 정몽구 회장이 원청사용자이기 때문이다. 유성에서 만드는 피스톤링을 현대·기아차가 주문해주고 있다. 더더욱 헌법에 보장된 민주노조 파괴도 현대·기아차 원청은 주문해 왔다.

2011년 창조컨설팅 관계자들과 유성 유시영 사장은 일주일에 한번씩 본사 14층으로 불려와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에 대한 대책회의를 했다고 한다. ‘밤엔 잠 좀 자자. 심야노동 철폐’라는 소박한 요구였다. ‘2011년부터 실시하되, 노사 협의한다.’ 2009년에 이미 합의서도 작성했다.

하지만 사측은 약속된 교섭을 해태하고 현대차 본사와 검경, 국정원과 정부 관계자들과 긴밀한 공조하에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밀어붙였다. 2012년 국회 청문회를 통해 이런 내용이 낱낱이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 2011년 노사 협의 이후 5년이 넘도록 탄압은 끊이지 않았다. 용역깡패들의 폭력, 직장폐쇄 5일 만에 헬기를 앞세워 투입된 4000명의 공권력, 해고, 징계, 고소·고발, 구속, 12억원에 이르는 손배가압류, 그리고 얼마 전 법원에서조차 유령노조로 판명난 어용노조를 통한 분열공작, 현장 곳곳에 감춰져 있던 소형 CCTV 30여대 등 정말 피를 말리는 5년이었다.

그런 폭력적인 일상에 시달리던 유성기업 한광호 조합원이 지난 3월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아직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이 불의한 시대는 어떻게 해산시켜야 할까. 또 거리의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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