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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시는지요. 문득 형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SNS로 전 세계와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데 웬 구닥다리 편지냐고요. 하지만 밤새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쓰고 우체국을 찾아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편지를 쓴다는 건 봉인된 마음 한 갈피를 전하는 귀한 일. 1년 내내, 아니 삶의 남은 시간 동안 이런 편지만 쓰며 살아도 좋겠습니다. 어떤 효율과 이윤도 낳지 못하는 불용한 시간. 하지만 그 시간에 우리가 고귀하게 여기는 ‘사랑’이나 ‘우정’ ‘믿음’ ‘신의’ ‘응원’ 같은 것들을 나누고 새긴다면 그보다 소중한 인간의 시간이 있을까요.

언제부터인가 자본의 이해를 위한 생산성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들. 바쁘게 살고, 힘써 일을 해보지만 다수는 도리어 간신히 생존하며, 일할수록 가난해지고, 고독해집니다. 세상의 부가 적어서가 아니겠죠. 인류의 생산력은 모두가 조금만 일하고도 생태적으로, 문화적으로 잘살 수 있을 정도를 넘어선 지 오래.

그러나 세상의 0.1%도 안되는 소수가 천문학적인 사회적 잉여를 독점하며 다수의 사람들은 소외와 고통을 받아야 하는 삶. 그런 모순을 넘어보고자 하는 사회운동. 생각하니 형과 그런 ‘용기’와 ‘투쟁’, ‘연대’의 길에 함께한 지도 꽤 됐네요. 2008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당시 귀한 한약을 계속 보내주는 이가 있었죠.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순천향대병원 4층 장례식장에서도 스쳤던 것 같습니다. 순천만 갈대밭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한진중공업 김진숙씨 얘기 나누던 날도 기억합니다. 검찰 기소 요지 중 2011년 희망버스 사전 답사를 그해 4월에 했지 않냐는 일도 형과 의논했었죠. 희망버스가 시작되고는 순천에서 부산까지 주말마다 현장진료를 다니던 형. 2012년부터는 아예 매주 목요일 한의원 문을 닫고 울산 현대차비정규직, 평택 쌍용차, 밀양, 제주 강정까지 전국을 떠돌며 연대의 인술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는 놀랍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게 자신의 일이라 했습니다. 학창시절 노동자로 살겠다고 들어간 공단. 그러나 고된 노동일을 견딜 수 없었던 건강. 한의사가 되어 자신처럼 힘써 일하고 싸우고 싶지만 건강이 허락지 않는 이들을 도우며 살아야겠다 했다죠. 사회운동 과정에서 지치거나 재충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남원 귀정사에 중묵처사님 등과 함께 ‘사회연대쉼터-인드라망’을 만들어 두시기도 했죠. 일주일에 한 번 아랫말 어르신들 건강까지 챙긴다는 말 들으며, 낯간지럽겠지만 우리 시대의 허준 같은 이구나 했습니다.

그렇게 진력을 다 쏟고 근래엔 힘이 부친다는 형께 한번쯤은 모두를 대신해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형은 약제만 짓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과 정의를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내 시의 어떤 부분에도 형의 사랑이 담겨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형과 같은 건강지킴이로 함께하는 길벗한의사회와 여러 보건의료 활동가분들도 기억합니다. 그런 우리 모두의 숨겨진 연대로 지켜가는 이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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