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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파견미술팀’들과 함께 대전 유성에 있는 ‘아트센터 쿠’엘 다녀왔다. 28일부터 작고한 ‘천재 조각가 구본주’전이 열리는데 작품 설치를 돕기 위한 나들이였다. 대부분 쇠 작업에 작품들 크기가 만만하지 않아 10톤 트럭 한 대분의 작품들을 옮기고, 닦고, 설치하는 고된 노동일이었다. 10주기 성곡미술관 전시 때는 친구들 수십 명이 사흘 동안 일해야 했는데 다행히 이번엔 전체 작품이 아니기도 하고,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별이 되다’ 작품이 나오지 않아 우리끼리 천만다행이라고 수군거렸다. 대추초교 앞에 서 있던 ‘갑오농민전쟁’상도 이번엔 내려오지 않았다. 토요일엔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 관련 현대차 본사 집회도 있었지만 시간을 내야 했다. 그렇게 중요한 전시전이냐고? 최소한 우리에게는 그렇다.

도착해 보니 이미 1층 로비에 ‘비스켓 나눠먹는 사람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대형 나무 벤치를 물고 있는 두 사내의 얼굴을 매만져 본다. 뺨에 긁힌 자국은 이제 모두 나았나? 지난날, 2년여 동안 기륭전자 비정규직 농성장에서 함께 눈비를 맞았다. 94일의 집단 단식도, 망루 투쟁도 함께 봤다.

뺨의 상처는 경찰과 용역들이 합동으로 농성장 전체를 싹쓸이하던 날 지게차 삽날에 밀리면서 났던 것이다. 부인인 전미영은 유작이어서 ‘억’이 넘어가고, 유명 미술관들에 임대해주었던 이 작품들을 본인이 매일 못 오는 대신 농성장을 함께 지키게 하겠다고 10톤 카고 트럭에 싣고와 우리를 놀라게 했다.

구본주의 '갑오농민전쟁'(1994)._경향DB

운임료 한 푼, 비타500 한 병 주지 않는 일이었다. 접근금지 띠를 에둘러놓은 이 귀한 작품이 기륭에서는 마침 필요했던 음식조리대였다. 전미영 나규환 이윤엽 전진경 정윤희 상덕 신유아 등 파견미술팀은 기륭 현장에 천막미술관을 설치해주고, 기금 마련전까지 열기도 했다.

‘구본주’와 전미영이, 그리고 파견미술팀이 해주었던 일들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을까. 그간 우리는 참 많이도 함께 어울려 전국을 떠돌았었다. 대추리, 용산, 지엠대우, 콜트콜텍,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쌍용차, 현대차, 밀양, 강정, 세월호까지 파견미술팀은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현장으로 ‘파견’하는 사람들이었다. 하나하나가 미술사적으로 남을 작품들도 많았지만 파괴되어도, 함부로 되어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우리들의 미술이 조금이나마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다면 됐지. 뭐.’

그 팀의 대장으로 일하던 전미영과 나규환은 그런 활동들로 세월과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지금은 안간힘으로 홍대역 3번 출구 근처에 아트숍이기도 한 ‘까페 본쥬르’를 열어두고 있는데, 비영리 전문인 사람들이 영리 일에 무슨 소질이 있을까. 도리어 빚만 산더미란다. 월급 100만원씩만 받아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사람들. 남 돕는 일엔 열심이지만 도통 자신들을 돕는 일엔 젬병인 사람들. 그래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친구들. 지난 금요일은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우리들의 파견 우정전이었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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