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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역 거리나 낙원동 악기상가 초입에서 시를 읽어주는 남자가 있었다. 어느 쪽에서 보나 잘못 구워진 옹기처럼 치켜세워 줄 곳 마땅찮은 이었다. 말을 많이 더듬어 귀를 쫑긋 세우고 한마디 한마디를 쫓아야 했던 이다. 늘 사람들 뒤편에그림자처럼 말없이 있어야 했던 이. 그런 그가 흡사 어떤 법정에 끌려나온 죄수처럼 달달달 떨며 읽어주던 시는, 그래서 원문 내용과 상관없이 항상 새로운 긴장의 시들로 다시 태어나곤 했다. 우리는 때로 객석에서 한 편의 코미디 같은 그의 시낭송을 들으며 웃곤 했지만, 진짜 웃음거리는 잘난 말들이 판을 치지만 도무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 사회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어눌함은 희한하게도 모든 지배와 계몽과 권위의 언어들, 현학적이고 유려한 언어들을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엔 타인의 시를 읽어주던 그가 글쓰기까지 시작했었다. 컴퓨터도 쓸 줄 몰라 편지지에 오글오글한 손글씨로 써나갔다. 맞춤법도 엉망. 설득력 있는 논리나 표현, 수사는 힘겹게 돌아가는 19세기 증기기관차 터번에게 21세기 후반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오가는 인터넷 세상을 꿈꾸라는 말과 같았다. 그런데 묘하게 그런 그의 서툰 손글씨에서 흔치 않은 사람의 진정성을 발견하곤 했다.
그렇게 2012년 7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오마이뉴스에 연재됐던 그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_연합뉴스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오늘로 노숙농성 3318일째인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 형의 경이로운 기록이다. 1983년부터 30년 동안 기타만 만들어 온 이다. 습도나 온도 영향을 많이 받아 사계절에 만들어진 기타 소리가 모두 다름을 아는 이다. 한국부자 순위 120위의 박영호 사장은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공장을 빼돌리곤 평균 근속 20년에 이르는 ‘식구’들을 모두 쫓아냈다. 대법원은 미래에 올 경영상의 위기도 정리해고가 가능하다는 사법 살인까지 보탰다.

목 잘린 기타처럼 거리에서 나뒹굴며 살아 온 10년. 지금 그의 집은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이다. 김무성 대표가 잘나가던 콜트-콜텍이 ‘강성노조’ 때문에 문을 닫았다고 온 나라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유포했다. 용서할 수도, 참을 수도 없다. 아직,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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