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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전태일이 있다면 미국엔 로자 파크스가 있다.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버스비가 없어 걸어서 집으로 가던 청년노동자 전태일. 그는 1970년 11월13일, 무용지물인 근로기준법 책과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면서 한국 사회 민주주의 운동의 분기점이 되었다. 전태일을 따르는 수많은 이들에 의해 한국 사회에 민주노조 운동이, 진보정당 운동이 어렵사리 자리를 잡게 되었다.

미국 몽고메리에서 전태일처럼 재봉사로 일하던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1955년 12월1일 버스 좌석을 평소처럼 백인에게 양보하라는 버스 기사의 인종차별에 맞서 ‘싫습니다’라고 저항하곤 감옥으로 끌려갔다. 그를 따라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몽고메리의 흑인들이 집단적인 버스 승차거부 운동에 나섰다. 로자 파크스가 체포된 지 1년 가까이 지난 1956년 11월13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결국 그간 인종 분리와 차별을 불법이라고 인정하고, 공공시설 내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연방 민권법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로자 파크스는 풀려나 흑인 민권 운동의 어머니가 되었다. 전태일이 죽고 한국 사회가 다시 태어난 ‘11월13일’, 로자 파크스가 풀려나고 미국 사회가 다시 태어난 ‘11월13일’. 우연이었겠지만 날짜도 같다.

미국의 로자 파크스 `버스 차별 철폐' 운동


‘일어나요. 로자’는 그의 이야기를 니키 지오바니라는 흑인 여성 시인이 동화로 재구성한 책 이름이기도 하다. 니키 지오바니는 내가 문학청년이던 시절, 하나의 알을 내가 깨고 나오는 데 큰 영감을 주었던 시인이기도 하다. 지금도 다음 시 구절을 잊지 못한다. ‘나는 어떤 백인도 나에 대한 얘기를 대신 써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가난과 절망을 노래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주체성이 허락되는 세상이면 좋겠다. 아니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이 사회의 주인으로 당당히 일어서서,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면, ‘싫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세상이면, 차라리 잡아가라고 집단적으로 일어설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특히 요즈음처럼 ‘비정상의 정상’이 판을 치는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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